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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 9. 15. 20:42 제약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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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요즘 부쩍 회의 자료에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물적분할'입니다. 그것도 공장이나 연구소가 아니라 영업·마케팅 부문만 콕 집어 떼어내는 방식이죠. 바로 지난 9월 15일, 보령이 전문의약품 영업·마케팅을 전담하는 커머셜 법인 '보령파마솔루션' 설립을 위한 물적분할을 이사회에서 결의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생산·R&D는 모회사에 남기고 파는 조직만 별도 회사로 세우겠다는 건데요. 오늘은 제약사가 왜 하필 '영업·마케팅'만 떼어내는지, 그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 성공·실패 사례를 실무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물적분할이 뭔가 — 인적분할과 헷갈리지 말자

개념부터 짚겠습니다. 회사를 쪼개는 방식은 크게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두 가지입니다.

  • 물적분할(物的分割)은 기존 회사가 특정 사업부를 떼어 신설 회사를 세우고, 그 신설 회사의 지분 100%를 모회사가 그대로 갖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모회사 → 자회사' 수직 구조가 됩니다. 기존 주주는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직접 받지 못하고, 모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소유하게 됩니다
  • 인적분할(人的分割)은 반대로 기존 주주가 지분율대로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직접 나눠 갖는 방식입니다. 두 회사가 나란히 서는 수평 구조에 가깝죠
  • 우리 상법은 인적분할을 원칙으로 하고 물적분할을 예외로 두고 있지만, 실무에서는 물적분할이 훨씬 자주 쓰입니다. 대주주가 지분 희석 없이 지배력을 유지한 채 자회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보령 사례도 정확히 이 물적분할입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은 보령이 지분 100%를 보유하는 완전자회사로, 2026년 10월 주주총회를 거쳐 2027년 1월 출범할 예정입니다.


왜 하필 '영업·마케팅'만 떼어내나 — 4가지 이유

공장도 연구소도 아니고, 왜 파는 조직만 별도 법인으로 세울까요? 실무적으로 보면 이유가 분명합니다.

  • ① 커머셜 전문화 —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 생산·R&D와 영업·마케팅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하나의 회사 안에 섞여 있으면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자원 배분도 애매해집니다. 영업·마케팅 인력을 한 법인에 결집시키면 커머셜에만 특화된 조직·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보령이 신설 법인을 '대한민국 최고 커머셜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한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 ② 외부 도입품목(라이선스인) 확대: 이게 핵심입니다. 자사 제품만으로는 영업조직의 '판매 총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별도 커머셜 법인을 두면 국내외 블록버스터 품목을 적극적으로 도입(license-in)해 판매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쉽습니다. 실제로 보령파마솔루션은 자사 처방품목에 더해 외부 도입 품목을 늘려 국내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영업조직을 '우리 약만 파는 곳'에서 '잘 파는 것 자체가 사업인 곳'으로 바꾸는 겁니다
  • ③ 성과 중심 보상체계 설계: 제조·연구직과 영업직을 같은 잣대로 평가·보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업만 따로 떼면 처방실적에 연동한 강력한 인센티브 체계를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영업·마케팅 인재를 끌어모으는 유인책이 되죠
  • ④ 사업별 가치의 독립 평가: 생산·R&D는 장기 투자와 파이프라인으로 평가받고, 커머셜은 매출·이익률로 평가받습니다. 두 사업을 분리하면 각 사업의 가치를 시장에서 별도로 인정받을 여지가 생깁니다

정리하면, 영업·마케팅 분할의 본질은 '파는 일'을 하나의 독립 사업으로 승격시켜 전문성과 외형을 동시에 키우는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장점 — 속도, 집중, 그리고 확장성

앞의 이유와 겹치지만, 분할이 주는 실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의사결정 속도: 분리된 법인의 대표는 커머셜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커집니다. 모회사의 복잡한 지배구조 속에서 결재가 지연되던 문제를 피할 수 있죠
  • 전문 인력 확보와 성과보상: 영업에 특화된 회사라는 정체성이 생기면 관련 인재 영입이 수월하고, 실적 기반 보상 설계도 자유롭습니다
  • 모회사 신용도 활용: 신설 자회사는 독립 법인이지만 초기에는 모회사의 신용과 브랜드를 그대로 업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금 조달과 도입품목 협상에서 유리하죠
  • 포트폴리오 확장의 유연성: 외부 품목 도입, 다른 제약사와의 공동판매 제휴 등을 '커머셜 회사' 단위로 빠르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단점 — '쪼개기 상장' 그림자와 조직 리스크

여기까지만 보면 좋은 전략 같지만, 물적분할에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그림자가 있습니다.

  • ① 쪼개기 상장 논란: 물적분할의 최대 리스크입니다. 알짜 사업부를 자회사로 떼어낸 뒤 그 자회사를 별도 상장(IPO)하면, 기존 주주는 정작 그 사업의 상장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의 사업이 모회사·자회사 두 곳에서 동시에 평가받는 '더블카운팅' 탓에 오히려 모회사 주가가 눌리는 '지주사 할인' 현상도 나타납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서도 모·자회사 동시상장 시 양쪽 기업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보령이 발표 즉시 "매각·분할상장 계획은 전혀 없다"고 못 박은 것도 이 우려를 의식한 겁니다
  • ② 주주가치 훼손 우려: 핵심 사업을 떼어감에도 기존 주주가 신설법인 지분을 받지 못하는 구조 자체가 반발을 부릅니다. 상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알짜를 왜 떼느냐"는 불만은 남습니다
  • ③ 조직·인력 동요: 영업·마케팅 인력이 통째로 다른 법인으로 이동합니다. 근로조건을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소속이 바뀌는 데서 오는 불안과 이탈 가능성은 상존합니다
  • ④ 계열사 간 거래·정합성 문제: 모회사(생산)와 자회사(판매)로 나뉘면 두 법인 간 내부거래가 발생합니다. 이전가격, 공급단가, 연결 실적 인식 등 관리 포인트가 늘어나고, 자칫 '한 몸이었을 때보다 비효율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 사례 ① — 동아제약(박카스·OTC) 물적분할

파는 사업을 떼어내 키운 대표적 성공 사례는 동아제약입니다.

  • 동아제약은 2013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박카스와 일반의약품(OTC) 사업을 비상장 자회사 '동아제약'으로 물적분할했습니다(전문의약품은 동아에스티로 인적분할, 존속법인은 동아쏘시오홀딩스로 전환)
  • 분사 첫해인 2013년 2,897억 원이던 매출은 이후 꾸준히 우상향해 2022년 5,430억 원, 2023년 6,31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소비자 접근성을 강화한 편의점용 박카스, 오쏘몰, 피부외용제(노스카나겔 등) 라인업이 성장을 이끌었죠
  • 최근에는 오펠라헬스케어로부터 둘코락스·알레그라 등 OTC 4개 품목의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따내며 '자사에 없던 품목을 글로벌 브랜드로 채우는' 커머셜 확장 전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아제약 사례의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소비자 대상 판매(OTC)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키면, 채널·브랜드·도입품목 전략을 훨씬 공격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이 그리는 그림과 결이 통하죠.


성공 사례 ② — 종근당 지주사 전환(사업부문 전문화)

방식은 인적분할이지만, '사업부문 분리를 통한 전문화'라는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 종근당은 2013년 투자사업부문(종근당홀딩스)과 의약사업부문(종근당)을 분할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목적은 사업부문별 독립 경영과 책임경영 체제 확립, 핵심사업 집중 투자였죠
  • 이후 지주사 종근당홀딩스는 자회사 종근당건강의 프로바이오틱스 '락토핏'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매출이 5년 새 4배 가까이 커졌습니다. 각 사업부문이 독립적으로 자기 시장을 공략한 결과입니다

핵심은 사업을 성격별로 나누면 각자의 성장 엔진이 따로 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회사 안에 묶여 있을 때는 묻혀 있던 사업이 독립하면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패(반면교사) 사례 ① — JW중외제약 CSO, 1년 만에 철수

반대로, '파는 기능을 밖으로 빼는' 시도가 기대만큼 안 된 사례도 있습니다. 물적분할과 법적 형태는 다르지만, '영업 기능 외부화'라는 큰 틀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합니다.

  • JW중외제약은 비주력 제네릭 품목을 대상으로 영업대행(CSO) 체제를 도입했지만, 수익성과 효율성이 기대에 못 미쳐 약 1년여 만에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 업계에서는 "혁신형 제약기업이 아닌 회사의 경우 CSO 운영이 오히려 수익성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고, 실제로 종근당도 과거 CSO 확대를 검토했다가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영업을 별도 조직·법인으로 떼어내는 것 자체가 만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떼어낸 조직이 충분한 물량(도입품목·자사품목)과 수익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면, '전문화'가 아니라 '비용 분산'에 그칠 수 있습니다. 보령이 도입품목 확대와 점유율 10%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커머셜 법인이 살려면 팔 물건이 계속 채워져야 하니까요.


실패(반면교사) 사례 ② —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후 주가 논란

제약은 아니지만, 물적분할의 위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LG화학은 2020년 배터리 사업(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한 뒤 상장시켰습니다. 그런데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알짜 배터리 사업의 상장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했고, 모회사 주가는 부진에 빠지면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크게 일었습니다
  • 이 사례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 쪼개기 상장'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대중에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한국 증시 전반에서 물적분할에 대한 감시가 강해졌죠

교훈은 분명합니다. 분할 자체보다 '분할 이후 상장 여부'가 시장 신뢰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보령이 이번에 "분할상장 계획 없음"을 반복 강조한 것은, 바로 이 LG화학 학습효과를 정확히 겨냥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영업·마케팅 물적분할 이슈가 OTC·커머셜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파는 일'이 독립 사업으로 승격되는 흐름을 읽어야 한다: 자사품목만 파는 영업에서, 외부 도입품목까지 얹어 '판매 역량 자체를 상품화'하는 커머셜 플랫폼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도입품목(LI) 소싱, 공동판매 제휴 감각을 길러두는 게 좋습니다
  • 분할의 성패는 '팔 물건'과 '보상'이 좌우한다: JW중외제약 사례처럼, 떼어낸 조직에 충분한 물량과 성과보상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문화는 공염불입니다
  • 시장은 '상장 여부'를 본다: 물적분할 뉴스가 나오면 반드시 '분할상장 계획이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회사 IR·홍보 메시지를 짤 때도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대주주·소액주주 신뢰를 가릅니다
  • 내부거래 설계를 미리 챙겨라: 생산 모회사와 판매 자회사로 나뉘면 공급단가·이전가격·연결 실적 인식이 곧바로 실무 이슈가 됩니다. 분할 전에 계열사 간 거래 구조를 명확히 세워둬야 합니다

정리하면, 제약사가 영업·마케팅만 물적분할하는 것은 단순히 조직을 쪼개는 게 아니라, '파는 일'을 전문 사업으로 독립시켜 커머셜 전문성과 외형을 동시에 키우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동아제약처럼 소비자 판매 사업을 독립시켜 성공한 사례도, JW중외제약처럼 영업 외부화가 기대에 못 미친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의 뒤에는 LG화학이 남긴 '쪼개기 상장' 학습효과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이 "매각·분할상장 계획 없음"을 거듭 강조한 것도 그래서죠. 결국 영업·마케팅 분할의 성패는 '얼마나 잘 떼어냈느냐'가 아니라 '떼어낸 조직이 팔 물건을 계속 채우고, 시장의 신뢰를 지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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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오리
2026. 9. 15. 16:54 제약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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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약사 로고를 마주칩니다. 발주서, 제품 카탈로그, 경쟁사 광고물, 심의 자료까지…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제약사 로고는 죄다 파랑 아니면 빨강이지?" 알고 보면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색채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말없이 건네는 첫 인사이거든요. 오늘은 잠깐 머리 식힐 겸, 2025년 매출 기준 국내 TOP 10 제약·바이오 기업의 '상징 색상'을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순위는 2025년 사업보고서(연결 기준)를 따랐습니다.

먼저, 제약사 로고에 왜 파랑·빨강·초록이 많을까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큰 그림부터 짚겠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약사 로고에 가장 많이 쓰이는 색은 푸른색 계열입니다.

파랑은 신뢰·안정·전문성을 상징합니다. 병원 가운, 의료기기, 정수(淨水)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약'이라는 인상을 주죠. 그래서 가장 무난하면서도 강력한 선택지입니다
빨강은 생명·열정·에너지를 뜻합니다. 심장, 혈액, 활력 같은 이미지와 맞닿아 있어 '기운을 되찾아주는 약'이라는 메시지에 어울립니다
초록은 안정·건강·자연을 상징합니다. 색채치료에서도 심신 안정을 위해 선호되는 색이라, 친환경·건강기능식품 이미지와 궁합이 좋습니다
오렌지·블랙처럼 정석에서 벗어난 색도 있습니다. 오렌지는 젊음·활동성·역동감을, 블랙·그레이는 프리미엄·무게감·모던함을 나타내죠. 남들과 다른 색을 고른다는 건 그 자체로 강한 차별화 선언입니다

이 축들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TOP 10을 보면, 각 회사가 어떤 이미지를 '입고 싶어 했는지'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1위. 삼성바이오로직스 — 삼성 블루

2025년 매출 4조 5,570억 원으로 국내 1위. 국내 제약·바이오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 2조 원을 넘긴 CDMO 강자입니다
상징 색상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유명한 삼성 블루(Samsung Blue). 삼성 특유의 짙고 선명한 파랑은 글로벌 신뢰와 첨단 기술력을 한 몸에 담고 있습니다
CDMO(위탁개발생산)라는 업(業) 자체가 '글로벌 제약사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느냐'로 승부하는 사업이라, 신뢰를 상징하는 블루만큼 정직한 색도 없죠

2위. 셀트리온 — 초록에서 진화한 블루·그린 계열

매출 4조 1,625억 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4조 클럽'을 형성한 바이오시밀러 대표 주자입니다
셀트리온은 전통적으로 초록색 계열을 안정·건강의 상징으로 써온 기업으로 분류됩니다. 생명공학 기업 특유의 '자연·건강' 이미지를 초록으로 표현해온 셈이죠
바이오시밀러라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체하는 사업 특성상 '안전하고 검증된'이라는 신뢰 메시지가 중요한데, 초록·블루 계열이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3위. 유한양행 — 버드나무의 초록

매출 2조 1,866억 원으로 전통 제약사 중 부동의 1위. 폐암 신약 렉라자의 성공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0% 넘게 뛰었습니다
상징 색상은 초록(그린).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잇는 '버드나무(willow)' 심볼과 맞물려,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초록 이미지가 가장 뚜렷한 기업입니다
초록이 주는 안정감과 자연 친화 이미지는, 오랜 역사와 사회공헌으로 쌓아온 유한양행의 '정직한 제약사' 브랜드와 완벽하게 겹칩니다

4위. GC녹십자 — 이름부터 초록, 그러나 로고는 딥블루

매출 1조 9,913억 원. 혈액제제와 백신의 강자로, 이름 그 자체가 '녹(綠)십자', 즉 초록 십자가입니다
재미있는 건 CI 변경 스토리입니다. 예전 녹색 십자가 로고가 해외에서 마약 판매점(그린 크로스) 이미지와 겹친다는 해프닝도 있었고, 글로벌 도약을 명분으로 2016년 사명을 'GC'로 바꾸며 CI를 교체했죠
현재 CI는 열정·도전을 상징하는 빨강과 건강·번영을 상징하는 초록이 맞물린 십자 심볼에, 로고타입에는 강직함·정직함을 뜻하는 짙은 청색(딥블루)을 씁니다. 파랑·빨강·초록이 한 로고에 다 들어간, 이 목록에서 가장 다채로운 색 구성입니다

5위. 종근당 — 탄생·생명·희망의 CKD 블루

매출 1조 6,924억 원으로 광동제약을 제치고 3위권 전통 제약사로 올라섰습니다(전통 제약사 기준)
상징 색상은 CKD 블루. 종근당은 이 청색에 '탄생·생명·희망'의 의미를 담아 시그니처 컬러로 오랫동안 써왔습니다
2025년 말 50여 년 만에 CI를 교체하면서도, 청색이 가진 이 의미만큼은 그대로 유지한 채 명도만 조정했습니다. 색을 바꾸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파랑이 종근당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뜻이죠

6위. 광동제약 — 빨간 색조의 로고

매출 1조 6,585억 원. 우황청심원·비타500·삼다수 등으로 익숙한 기업입니다
광동제약은 국내 제약사 중 빨간색(혹은 빨간 색조) 로고를 쓰는 대표 그룹에 속합니다. 한미약품, 일동제약, 동화약품 등과 함께 '레드 계열' 진영이죠
빨강이 주는 생명력·에너지 이미지는 '건강 음료'와 '자양강장' 이미지가 강한 광동제약의 제품 포트폴리오와도 결이 잘 맞습니다

7위. 대웅제약 — 이 중 유일한 오렌지

매출 1조 5,709억 원. 우루사·임팩타민·이지엔6로 잘 알려진 OTC 강자입니다
상징 색상은 DW 오렌지(Pantone 114C)와 보조색인 다크 그레이(Pantone 425C). CI 규정에 따르면 오렌지는 젊음·활동력·약동감을, 그레이는 안정성·신뢰성·성장성을 의미합니다
파랑·빨강·초록이 넘쳐나는 제약업계에서 오렌지를 주색으로 밀고 나가는 건 그 자체로 강력한 차별화입니다. 매대에서 대웅 제품이 유독 눈에 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죠. 전문의약품 라벨까지 오렌지로 통일하는 BII(브랜드 이미지 통합) 전략을 쓰는 것도 이 연장선입니다

8위. 한미약품 — 국내 레드 로고의 원조

매출 1조 5,475억 원. R&D 중심 제약사의 대표주자입니다
한미약품은 국내에서 빨간색 로고를 처음 시작한 기업으로 꼽힙니다. 이후 여러 제약사가 레드 계열을 따라온 만큼, '제약 레드'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죠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있습니다. 로고는 빨강이지만, 전문의약품 포장 라벨은 오히려 파란색으로 통일하는 BII 전략을 씁니다. 대외 브랜드 색과 제품 라벨 색을 다르게 운용하는, 나름의 이원 전략인 셈입니다

9위. HK이노엔 — 케이캡의 그 브랜드

매출 1조 632억 원으로 매출 1조 클럽에 든 기업.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K-CAB)'으로 유명하죠
옛 CJ헬스케어에서 한국콜마 그룹으로 편입되며 'HK이노엔'으로 새출발한 만큼, CI에도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강조하는 현대적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신약 개발과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답게, 신뢰의 블루를 기반으로 하되 젊고 세련된 톤을 더한 색 운용이 특징입니다

10위. 보령 — 파랑·빨강 다 버리고 '블랙'을 택한 제약사

매출 1조 174억 원으로 1조 클럽에 안착. 겔포스·용각산으로 익숙하고, 2022년 '보령제약'에서 '보령'으로 사명을 바꿨습니다
상징 색상이 이 목록에서 가장 독특합니다. 보령의 CI 컬러 시스템을 보면 메인 컬러가 보령 블랙(PANTONE Black C)보령 다크 그레이(PANTONE 425C), 즉 무채색 계열입니다. 여기에 서브 컬러로 골드(874C)·실버(877C)·웜 그레이 3종을 더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톤을 완성했죠
파랑(신뢰)도 빨강(생명)도 아닌 블랙·골드를 택했다는 건, '전통 제약사'라는 틀을 넘어 프리미엄·모던·확장의 이미지를 지향한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보령은 국가필수의약품 안정 공급, 항암제 공급망 다변화 같은 '제약사만이 할 수 있는 ESG'를 사회적 성과의 중심에 두는 한편(이전 ESG 글에서도 다룬 바 있습니다), 우주 헬스케어 사업(CIS)까지 외연을 넓히고 있습니다. 미래로 확장하는 기업다운 색 선택인 셈이죠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가볍게 시작한 글이지만, 색 이야기 안에도 마케팅 실무의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색은 '포지셔닝'의 첫 문장이다: 신뢰를 팔면 파랑, 활력을 팔면 빨강, 자연·건강을 팔면 초록, 차별화·프리미엄을 원하면 오렌지나 블랙. 신제품 패키지나 브랜드 론칭을 기획할 때, 경쟁사가 어느 색 진영에 몰려 있는지부터 보는 게 순서입니다
레드 오션에서 튀는 색이 먹힌다: 대웅제약의 오렌지, 보령의 블랙처럼 남들 다 쓰는 파랑·빨강을 피하면 매대에서의 시인성(視認性)이 확 올라갑니다. 색 하나가 곧 진열 경쟁력이 되는 셈이죠
브랜드 색과 제품 라벨 색은 분리할 수 있다: 한미약품처럼 기업 로고(빨강)와 전문약 라벨(파랑)을 다르게 가는 전략도 있습니다. 대외 이미지와 현장 식별성이라는 두 목표를 나눠서 잡는 방식입니다
색을 바꿀 때도 '의미'는 지킨다: 종근당이 50년 만에 CI를 바꾸면서도 청색만은 유지한 것처럼, 오랜 브랜드 자산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게 리브랜딩의 기본기입니다

정리하면, 국내 TOP 10 제약사의 색을 늘어놓고 보면 파랑(삼성바이오로직스·종근당·HK이노엔), 초록(유한양행·셀트리온), 빨강(광동제약·한미약품), 파랑+빨강+초록의 조합(GC녹십자), 오렌지(대웅제약), 그리고 블랙(보령)까지 제법 다채롭게 나뉩니다. 그저 예뻐서 고른 색이 아니라, 각 회사가 소비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압축한 결과물이라는 거죠. 다음에 약국이나 마트에서 제약사 로고를 보게 된다면, "이 회사는 무슨 색을 입고 있나, 그리고 왜?"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브랜드를 읽는 눈이 한 뼘 더 넓어질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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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오리
2026. 9. 10. 22:35 제약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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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이건 왜 약이고 저건 왜 건기식이지?"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종합비타민 '센트룸'입니다. 지금은 마트·온라인·약국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대표 건강기능식품이지만, 원래 센트룸은 엄연한 일반의약품이었죠. 오늘은 이 센트룸이 왜 약에서 건기식으로 '옷을 갈아입었는지', 그 배경과 실무적 함의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같은 비타민이 왜 약도 되고 건기식도 되나
센트룸 얘기를 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똑같은 성분·함량의 비타민인데 어떤 건 일반의약품이고 어떤 건 건강기능식품입니다. 이게 왜 갈리느냐가 이번 글의 핵심 열쇠입니다.

  • 식약처의 설명을 빌리면, 원료가 동일해도 '사용목적'에 따라 일반의약품으로도, 건강기능식품으로도 허가를 낼 수 있습니다. 공산품이 이용목적을 달리하면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죠
  • 치료·예방을 목적으로 약효를 인정받으면 일반의약품, 건강 유지·증진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기획하면 건강기능식품이 됩니다
  • 이 차이는 표기·광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일반의약품 종합비타민은 '피로회복', '구내염 완화' 같은 구체적 효능을 쓸 수 있지만, 건기식은 '체내 에너지 형성에 필요',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처럼 간접적인 표현만 허용됩니다

정리하면, 비타민의 분류는 성분이 아니라 제약사가 제품을 어떤 목적으로 기획하고 허가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센트룸의 신분 변화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센트룸의 이력 - 1994년 일반약으로 데뷔, 2017년 건기식으로 전환
센트룸의 국내 이력을 시간순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 1994년: 국내에 일반의약품 멀티비타민으로 처음 출시. 오랫동안 화이자의 간판 OTC 브랜드였습니다
  • 2017년: 일반의약품 품목허가를 취하하고 건강기능식품으로 전환. 이때부터 약국뿐 아니라 대형마트·온라인 등으로 유통 채널이 확 넓어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센트룸은 2004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적용 소급범위 이전에 이미 판매되던 품목이라, 다른 비타민들과 달리 자동으로 건기식 전환이 되지 않은 채 계속 일반의약품으로 남아 있던 케이스였습니다. 즉 처음부터 '약으로 있을 수밖에 없던' 태생적 배경이 있었던 셈이죠.


핵심 - 왜 굳이 건기식으로 바꿨나 (직구·분류 차이 문제)
그럼 잘 팔리던 일반의약품을 왜 건기식으로 바꿨을까요? 결정적 방아쇠는 국내와 국외의 제품 분류 차이,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직구 민원이었습니다.

  • 센트룸은 국내에서는 일반의약품이었지만, 미국·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는 식품 혹은 식이보충제(dietary supplement)로 유통됩니다. 실제로 종합비타민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으로도 '음식의 한 종류'로 인정되고, 미국에서도 식이보충제로 분류되죠
  •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반입하거나 직구로 센트룸을 사들이는 사례가 꾸준히 늘었고, "해외에서 식품으로 산 제품을 들여오는 게 왜 문제냐"는 민원이 계속 제기됐습니다
  • 국내에서는 의약품이라 직구·통관 규제를 받는데, 원 판매국에서는 식품이니 소비자 입장에선 납득이 안 되는 구조였던 겁니다
  • 화이자가 확인해보니, 국내 수입의약품 중 해외와 국내 분류가 이렇게까지 확연히 다른 제품은 센트룸이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결국 화이자는 이 '한 몸 두 신분' 상태에서 벌어지는 통관·직구 혼선과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분류를 아예 해외와 같은 '식품(건기식)'으로 맞추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2017년 건기식 전환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전환의 '숨은 이득' - 유통 채널 확대
명분은 직구·분류 문제 해소였지만, 실무 관점에서 보면 건기식 전환에는 분명한 부수 효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통 채널의 대폭 확대입니다.

  • 일반의약품은 오직 약국에서만 팔 수 있습니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이 되면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몰, 홈쇼핑까지 판매처가 활짝 열립니다
  • 센트룸은 일반약 시절 '고가격·저마진'에 지명구매율이 높은, 이른바 약국 필수 구성품으로 포지셔닝돼 있었습니다. 마진은 박한데 안 갖다 놓을 수는 없는 품목이었죠
  • 건기식 전환은 이 브랜드를 약국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꺼내 소비자 접점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즉 '직구 민원 해소'라는 정당한 명분과 '채널 확장'이라는 사업적 실익이 맞아떨어진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국 입장에서는 - 계륵이 된 지명 품목
여기서 실무적으로 짚어야 할 게 약국가의 반응입니다. 채널이 넓어진다는 건 뒤집어 보면 약국의 독점 판매권이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 건기식 전환 이후 센트룸이 마트·온라인에 풀리면서, 약국 판매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다만 지명도가 워낙 높은 품목이라 약국 입장에선 안 갖다 놓기도 애매한 '계륵' 신세가 됐죠
  • 화이자(이후 GSK컨슈머헬스케어)는 이런 반발을 의식해 약국 전용 라인('센트룸 프로', '센트룸 실버프로' 등)을 별도로 공급하는 투트랙 전략을 폈습니다. 마트용과 약국용을 나눠 채널 갈등을 완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그럼에도 소비자 입장에선 센트룸이 일반약인지 건기식인지 허가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회사의 가격·반품 정책이 약국 안착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됐습니다

이 대목은 앞서 다뤘던 '창고형 약국' 이슈와도 통합니다. 건기식이 약국 밖으로 나가 마트·온라인과 경쟁하는 순간, 동네 약국의 매출 방어가 화두가 된다는 점에서 결이 비슷하죠.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센트룸 사례가 OTC·건기식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분류는 '성분'이 아니라 '허가 전략'이다: 같은 종합비타민이라도 치료 목적으로 갈지, 건강 증진 목적으로 갈지에 따라 신분이 바뀝니다. 신제품 기획 단계에서 어느 트랙을 탈지가 곧 채널·광고 전략을 결정합니다
  • 채널과 규제는 세트로 움직인다: 일반약은 약국 독점이라는 보호막이 있는 대신 채널이 좁고, 건기식은 채널이 넓은 대신 경쟁이 무한대입니다. 어느 쪽이 브랜드에 유리한지는 품목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 글로벌 분류와의 정합성도 변수다: 해외에서 식품인데 국내에서만 의약품이면 직구·병행수입 문제가 상시 발생합니다. 글로벌 브랜드일수록 국내외 분류를 맞추는 게 관리 비용을 줄이는 길일 수 있습니다
  • 전환에는 '구제품 처리' 부담이 따른다: 실제로 센트룸도 전환 과정에서 약국이 보유한 구 일반약 재고 판매·반품 문제가 두고두고 잡음이 됐습니다. 분류를 바꾸는 결정에는 기존 유통 재고 정리 계획이 반드시 함께 서야 합니다

정리하면, 센트룸의 건기식 전환은 단순히 "약을 식품으로 격하시킨" 사건이 아니라, 국내·국외 분류 차이에서 비롯된 직구 민원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유통 채널을 넓힌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비타민의 신분은 성분이 아니라 사용목적과 허가 전략이 결정한다는 점, 그리고 그 결정이 곧 채널·광고·약국 관계까지 연쇄적으로 바꾼다는 점을 센트룸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뭅니다. OTC와 건기식의 경계에서 제품을 기획하는 실무자라면, '이 제품을 어느 옷을 입혀 내보낼 것인가'를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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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오리
2026. 9. 6. 23:12 제약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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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예전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던 단어들이 요즘 부쩍 회의 자료에 등장합니다. 탄소중립, 넷제로, 재활용률, 인권영향평가 같은 것들이죠. 바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이야기입니다. 매년 봄이 되면 주요 제약사들이 앞다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6~7월에 걸쳐 보고서가 쏟아졌습니다. 오늘은 ESG가 왜 제약업계에서 특히 중요해졌는지, 그리고 각 제약사가 실제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대표 사례 중심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ESG가 뭔가 — 세 글자부터 정리

먼저 개념부터 짚겠습니다. ESG는 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 성과만이 아니라 아래 세 가지 비재무적 요소를 함께 본다는 개념입니다.

  • E(Environment, 환경):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전환, 폐기물·자원순환, 친환경 포장 등
  • S(Social, 사회): 안전보건, 인권, 협력사 상생, 지역사회 공헌, 그리고 제약업계 특유의 '의약품 접근성'
  • G(Governance, 지배구조): 이사회 독립성, 주주가치 제고, 반부패·윤리경영, 리스크 관리

핵심은 이제 이게 '착한 기업 이미지 만들기'용 홍보가 아니라 투자 유치와 규제 대응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됐다는 점입니다. 그 배경을 다음 항목에서 보겠습니다.


왜 하필 지금, 제약업계가 ESG에 매달리나

ESG 자체는 전 산업에 걸친 흐름이지만, 제약업계가 특히 발 빠르게 움직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 공시 의무화가 코앞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이후 중견·중소기업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입니다. 준비가 안 된 기업은 곧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죠
  • 글로벌 투자자가 ESG를 봅니다: 해외 수출·기술수출·라이선스 계약이 많은 제약바이오 특성상, MSCI 같은 글로벌 ESG 평가 등급이 곧 투자 유치와 파트너십의 문턱이 됩니다
  • 업(業)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약은 애초에 '국민 건강'이라는 공적 가치를 다루는 산업입니다. 필수의약품 안정 공급, 의약품 접근성 확대 같은 활동은 다른 업종의 ESG와 달리 사업 그 자체와 직결됩니다

정리하면, 제약업계에 ESG는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투자·규제·업의 본질이 한꺼번에 걸린 생존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실제 사례로 보는 제약사 ESG

말로만 하면 감이 안 오니 대표 사례를 축별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환경(E) — SK바이오사이언스·대웅제약·GC녹십자

  • SK바이오사이언스는 사업장 직접 배출(Scope 1·2)을 넘어 원료 조달·물류·유통 등 공급망 전반의 온실가스(Scope 3)까지 산정해 제3자 검증을 완료했습니다.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NFD) 프레임워크로 생물다양성 영향까지 공개한 것도 특징이죠. 2026년부터는 안동 공장 등 주요 사업장이 태양광 발전 전력을 공급받습니다
  • 대웅제약은 병 포장 제품의 완충제가 불필요하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해 우루사정·대웅로수바스틴정 등의 포장재를 제거하고, 그 결과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플라스틱 사용량을 전년 대비 약 1,680t 줄였습니다
  • GC녹십자는 제약업계 최초로 SK E&S와 계약을 맺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공장 조명을 LED로 바꿔 소비전력을 절감하는 것도 여러 제약사가 공통으로 하는 대표적 환경 활동입니다

② 사회(S) — SK바이오사이언스·보령

  •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기업답게 '의약품 접근성'을 사회 부문 핵심으로 내세웁니다. 단순히 백신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외 지역이 스스로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전 사업을 추진 중이죠
  • 보령은 국가필수의약품인 경구용 페니실린계 항생제 생산시설을 증축해 연간 생산능력을 2배 이상 늘렸습니다. 세포독성항암제 공급망 다변화 등 '필수의약품 안정 공급'을 사회적 성과의 중심에 뒀는데, 제약업만이 할 수 있는 ESG의 좋은 예시입니다. 여기에 천연기념물 황새 복원 사업 같은 차별화된 환경·사회 공헌도 눈에 띕니다

③ 지배구조(G) — 일동제약·한미약품·유한양행

  • 일동제약은 한국거래소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 준수율을 전년 대비 60%포인트나 끌어올리며 지배구조 개선 폭이 컸습니다.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강화, 전사 통합 리스크 관리 체계 정비도 함께 추진했죠
  • 한미약품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주주환원율 20% 목표를 공개하는 등, 단순 지표 충족을 넘어 실질적 거버넌스 개선에 나섰습니다
  • 유한양행은 2050년 넷제로 목표를 세우고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참여,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TCFD) 지지 선언 등 국제 기준에 맞춘 대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SG의 함정 — '스펙 채우기'와 그린워싱

여기까지만 보면 ESG는 무조건 좋은 흐름 같지만, 실무에서 경계해야 할 지점도 분명합니다.

  • 가장 자주 지적되는 건 '스펙 채우기(형식적 준수)' 문제입니다. 특히 중소·중견 제약사를 중심으로 전자투표, 승계정책, 배당정책 같은 핵심 지표를 여전히 미준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보고서는 냈는데 실제 경영 구조는 바뀌지 않는 경우죠
  • 그린워싱(green-washing) 리스크도 있습니다. 실제 성과 없이 친환경·사회공헌 이미지만 부풀리면, 오히려 공시 의무화 이후 검증 단계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 결국 관건은 ESG가 홍보용 보고서에서 그치느냐, 실제 경영 구조와 제품·공급망까지 바꾸느냐입니다. 상법 개정 흐름과 맞물려, 앞으로는 '얼마나 그럴듯한 보고서를 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느냐'로 평가의 무게중심이 옮겨갈 전망입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챙길 포인트

OTC·마케팅 실무 관점에서도 ESG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 친환경 포장이 제품 기획 단계로 들어옵니다: 대웅제약 사례처럼 완충재·용기 단순화, 재활용 포장재 전환은 이제 원가·환경·마케팅이 얽힌 의사결정입니다. 신제품 패키지 기획 시 ESG 관점을 미리 반영해두는 게 좋습니다
  • 필수의약품·접근성은 곧 브랜드 자산입니다: 보령·SK바이오사이언스처럼 '공급 안정'과 '접근성'을 사회적 성과로 내세우는 건, 제약사만이 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ESG 스토리입니다. 광고·홍보 메시지로도 강력한 차별점이 됩니다
  • 공시 의무화 일정을 캘린더에 박아두세요: 자산 규모에 따라 의무 공시 시점이 다가옵니다. 데이터 수집 체계(온실가스·폐기물·에너지 지표 등)를 미리 갖춰두지 않으면 막판에 큰 부담이 됩니다

정리하면, 제약회사의 ESG 경영은 이제 여유 있는 기업의 '착한 활동'이 아니라, 투자 유치·규제 대응·업의 본질이 한꺼번에 걸린 생존 조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공급망 탄소 관리, 대웅제약의 포장재 감축, 보령의 필수의약품 안정 공급, 일동제약의 지배구조 개선처럼, 각 사는 자기 사업 특성에 맞는 ESG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힘이 곧 함정이기도 합니다. '스펙 채우기'와 그린워싱을 넘어서지 못하면, 보고서만 두툼해지고 경영은 제자리인 결과로 이어지니까요. 결국 ESG의 성패는 '얼마나 그럴듯하게 공시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아시아경제(2026.6.5), 메가경제(2026.6.5), 인사이트코리아(2026.6.5), 메디팜헬스뉴스(2026.6.29), 컨슈머와이드(2026.6), 히트뉴스(2026.6), 데일리팜, JW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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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오리
2026. 9. 3. 21:31 제약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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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콜라의 LE


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신제품 회의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LE', 라인 익스텐션(Line Extension)입니다. 없던 브랜드를 새로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광고와 인지도로 다져놓은 간판 브랜드에 제형·용량·타깃을 하나씩 얹어 라인업을 넓히는 전략이죠. 판피린이 액상만 팔다가 산 제형·차(茶) 타입을 내고, 게보린이 40년 만에 연질캡슐·소아용을 내는 게 전부 이 LE의 결과물입니다. 오늘은 이 LE 전략이 뭔지, 왜 광고품목에서 특히 자주 쓰이는지, 그리고 함정은 없는지를 실무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LE(라인 익스텐션)이 뭔가

먼저 개념부터 짚겠습니다. 브랜드 확장 전략은 보통 아래 그림처럼 '브랜드(기존/신규)'와 '제품 카테고리(기존/신규)'라는 두 축으로 나눠서 이해합니다.

[이미지 ① 삽입 위치 — 브랜드×제품 카테고리 4분면 매트릭스 (27146.png)]

  • 이 매트릭스에서 라인 익스텐션(Line Extension)은 왼쪽 위, 즉 '기존 브랜드 × 기존 카테고리' 칸에 위치합니다. 이미 가진 브랜드를 그대로 두고, 같은 제품군 안에서 버전만 늘리는 방식이라는 뜻이죠
  • 오른쪽 위 브랜드 익스텐션(Brand Extension)은 '기존 브랜드 × 신규 카테고리'입니다. 같은 브랜드를 아예 다른 제품군(예: 화장품·건기식)으로 넓히는 것으로, LE와 가장 헷갈리는 개념입니다
  • 아래 두 칸은 브랜드 자체가 새로운 경우로, 멀티 브랜드(기존 카테고리에 새 브랜드 추가)와 뉴 브랜드(신규 카테고리에 새 브랜드)로 나뉩니다

정리하면, 라인 익스텐션은 기존 제품의 새로운 버전이나 개선형을 같은 브랜드 아래로 내놓는 것을 말합니다. 제약에서는 용량(함량), 제형(액상·정제·연질캡슐 등), 적응증, 복용 타깃을 바꾸는 형태가 대표적이죠. 핵심은 '브랜드명은 그대로, 안은 다르게'입니다. '판피린큐'와 '판피린티'처럼 모(母)브랜드의 자산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 제품 수만 늘리는 구조입니다.

제약이 아닌 소비재로 보면 감이 더 쉽게 옵니다. 대표적인 게 코카콜라입니다.

[이미지 ② 삽입 위치 — 코카콜라 라인업 예시 (27147.jpg)]

  • 오리지널 코카콜라 하나에서 출발해 코카콜라 라이트, 제로, 라이프, 다이어트 코크로 갈라진 이 라인업이 바로 라인 익스텐션의 교과서적 사례입니다
  • 전부 '탄산음료'라는 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코카콜라'라는 같은 브랜드를 유지한 채 무설탕·저칼로리 같은 변주만 준 것이기 때문이죠. 앞의 매트릭스 기준으로 봐도 브랜드와 카테고리가 모두 그대로이므로 라인 익스텐션 칸에 정확히 들어갑니다
  • 즉 LE는 '이미 알려진 이름값을 최대한 재활용하는 확장'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판피린·게보린이 새 제형을 붙이는 것과 코카콜라가 제로·라이트를 붙이는 것은 원리가 똑같습니다

왜 하필 '광고품목'에서 LE가 잘 먹히나

LE가 유독 광고품목(대중광고를 집행하는 OTC 대표 브랜드)에서 자주 나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 광고비를 새로 안 써도 됩니다: 신규 브랜드를 띄우려면 인지도 0에서 시작해 막대한 광고비를 쏟아야 합니다. 반면 LE는 이미 '감기 조심하세요' 같은 캐치프레이즈와 브랜드 인지도가 완성된 상태에서 출발하니, 신제품 하나에 들어가는 마케팅 비용이 훨씬 적게 듭니다
  • 약국·소비자 진입장벽이 낮습니다: 약사도 소비자도 이미 아는 이름이라 매대 진입과 구매 결정이 빠릅니다. "판피린인데 밤에 먹는 버전"이라고 하면 설명이 필요 없죠
  • 편의점 상비약·계절 수요 등 '빈틈'을 메웁니다: 하나의 제형으로는 놓치는 수요가 생깁니다. 액제를 선호하는 소비자, 정제를 선호하는 소비자, 야간용, 소아용처럼 세분화된 니즈를 라인업으로 촘촘히 덮는 겁니다

정리하면, 이미 쌓아둔 브랜드 자산의 '레버리지'를 극대화하는 게 광고품목 LE의 본질입니다.


실제 사례로 보는 LE - 판피린과 게보린

말로만 하면 감이 안 오니 대표 사례 둘을 보겠습니다.

① 동아제약 판피린 - 제형·시간대 확장의 교과서

  • 판피린은 오랫동안 약국용 액상(판피린큐)과 편의점용 알약(판피린티) 중심 구조였습니다
  • 그러다 2025년 환절기를 기점으로 산 제형, 차(茶) 타입, 야간용(판피린나이트) 등으로 라인업을 대폭 넓혔습니다. 액제를 선호하는 소비자 기호를 못 맞춘 정제의 한계, 그리고 경쟁 브랜드(판콜)에 추격을 허용한 상황을 라인 확장으로 반격한 것입니다
  • 결과적으로 판피린 브랜드는 2026년 1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성장하며 라인업 확대 효과를 봤습니다

② 삼진제약 게보린 - 40년 브랜드의 다변화

  • 1979년 허가받은 게보린정은 오랫동안 단일 품목이었습니다. 사실상 첫 확장은 2001년 소아 전용 '게보린 아이 츄정'이었죠
  • 본격적인 확장은 2020년부터입니다. 게보린 소프트 연질캡슐, 게보린 쿨다운 정(비타민 함유 해열진통제), 게보린 릴랙스 연질캡슐(이부프로펜+마그네슘 복합제)을 잇따라 출시하며 하나의 브랜드를 여러 성분·제형으로 펼쳤습니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명확합니다. 간판 이름은 그대로 두고, 그 아래에 서로 다른 수요를 겨냥한 제품을 붙였다는 것입니다.


LE의 함정 - 카니발라이제이션(자기잠식)

여기까지만 보면 LE는 무조건 좋은 전략 같지만, 실무에서 반드시 경계해야 할 리스크가 있습니다. 바로 카니발라이제이션(cannibalization, 자기 시장 잠식)입니다.

  • 카니발라이제이션은 새로 낸 제품이 자사의 기존 제품 매출을 갉아먹는 '제 살 깎아먹기' 현상을 말합니다
  • LE는 같은 브랜드·같은 카테고리 안에서 제품을 늘리는 구조라, 신제품이 시장을 넓히는 게 아니라 기존 제품 고객을 그대로 흡수해버리면 브랜드 전체 매출은 제자리인데 품목 관리 비용만 늘어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 여기에 브랜드 정체성이 흐려지는 '브랜드 희석'도 따라옵니다. 라인이 너무 많아지면 소비자가 "그래서 이 브랜드는 뭐하는 약이지?"라는 혼란을 느끼게 되죠

다만 카니발라이제이션이 무조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경쟁사에 뺏길 시장이라면 차라리 자사 신제품으로 먼저 잠식하는 게 낫다는 '선점적 카니발라이제이션' 관점도 있습니다. 판피린이 경쟁 브랜드에 밀리느니 스스로 야간용·차 타입을 내서 수요를 붙잡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관건은 신제품이 기존 제품 고객을 단순 대체하는지, 아니면 새 수요를 실제로 창출하는지를 냉정하게 구분하는 데 있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체크할 포인트

LE를 기획하는 OTC 실무자라면 아래를 짚어보는 게 좋습니다.

  • 타깃이 겹치는가, 갈라지는가: 신제형이 기존 제품과 같은 소비자를 두고 싸우면 자기잠식, 다른 소비자(야간·소아·편의점 등)를 새로 데려오면 순증입니다
  • 광고 메시지가 모브랜드와 충돌하지 않는가: 확장이 브랜드 핵심 이미지('초기 감기약' 같은)를 강화하는 방향인지, 흐리는 방향인지 봐야 합니다
  • 매대·재고 부담 대비 실익이 있는가: 품목이 늘면 약국 매대 확보 경쟁과 재고 관리 부담도 함께 늘어납니다. SKU 하나 늘리는 게 정말 매출 순증으로 이어지는지 계산이 필요합니다
  • 표준제조기준·허가 트랙 확인: 새 제형·성분이 표준제조기준 안에 있으면 신고로 빠르게 가지만, 밖에 있으면 별도 허가 심사가 필요해 개발 속도가 달라집니다 (관련해서는 이전 '표준제조기준 개정' 글도 참고)

정리하면, LE(라인 익스텐션)은 이미 광고로 완성해둔 브랜드 자산을 재활용해 최소 비용으로 라인업을 넓히는, 광고품목에서 가장 효율 높은 확장 전략입니다. 판피린·게보린처럼 오래된 간판일수록 제형·타깃 변주로 새 수요를 붙잡기 좋죠. 다만 그 힘이 곧 함정이기도 합니다. 자기잠식과 브랜드 희석을 넘어서지 못하면, 품목만 늘고 브랜드는 제자리인 결과로 이어지니까요. 결국 LE의 성패는 '얼마나 많이 확장했느냐'가 아니라 '확장이 새 수요를 진짜로 만들어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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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오리
2026. 8. 28. 07:31 제약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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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의약품(OTC) 업무를 하다 보면 요즘 약국가에서 가장 뜨거운 키워드가 '창고형 약국'이라는 걸 자연스럽게 체감하게 됩니다. 대형 마트처럼 쇼핑 카트를 끌고 다니며 상비약과 영양제를 담는 이 새로운 약국 형태가, 그동안 국회와 복지부의 규제 정중앙에 서 있었죠. 그런데 바로 어제(8월 26일), 관련 법안이 마침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오늘은 이 소식을 포함해 창고형 약국을 둘러싼 규제 흐름을 실무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속보부터 - '창고·공장' 명칭, 이제 못 씁니다

먼저 가장 중요한 소식입니다. 8월 26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남인순 의원이 대표발의한 약사법 개정안, 이른바 '약국 명칭 제한법'을 의결했습니다.

  • 이 법은 약국 명칭을 통해 소비자가 의약품을 일반 상품처럼 인식하거나 과도한 구매를 하도록 유도하는 것을 막는 데 초점을 맞췄습니다
  • '창고'나 '공장' 등 의약품을 대량으로 취급하는 이미지를 주는 표현, 이와 유사한 의미의 외국어, 소비자나 환자가 의약품을 남용하게 할 우려가 있는 표시를 약국 고유 명칭으로 쓸 수 없게 됩니다
  • 구체적으로 어떤 표현이 금지될지는 보건복지부령(하위법령)에서 정하게 됩니다

즉, 법 자체는 '포괄적 금지 근거'만 세워둔 것이고, 실제 규제 대상 표현의 윤곽은 앞으로 나올 시행규칙에서 확정됩니다. 이 부분은 뒤에서 더 짚겠습니다.


창고형 약국, 1년 만에 40곳으로 폭증했습니다

왜 이런 법까지 만들어졌는지 배경부터 보겠습니다.

  • 2025년 6월 경기도 성남에 국내 첫 '메가팩토리'가 문을 연 이후, 2026년 6월 기준 전국에 약 40곳의 창고형 약국이 생겼습니다
  • 대형 마트처럼 쇼핑 카트로 일반의약품·건강기능식품을 자유롭게 담아 구매하는 시스템에, 늦은 시간까지 운영하고 가격 경쟁력도 높아 '약국계 코스트코'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 약사회가 2026년 4월 전국 535개 약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에서는 응답자의 81.6%가 창고형 약국 문제가 '심각하다'고 답했고, 영양제(72.8%)·상비약(53.3%) 등의 매출 감소를 경험했다고 응답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고 편한데, 동네 약국 입장에서는 매출이 직접 빠지는 구조라 갈등이 첨예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규제의 두 축을 나눠서 봐야 합니다

창고형 약국 규제는 사실 성격이 다른 두 개의 법안으로 굴러왔습니다. 이걸 섞어서 이해하면 헷갈리니 나눠서 정리하겠습니다.

① 네트워크 약국 금지법 (운영 차단) — 통과·11월 시행

  • 서영석 의원이 2025년 9월 발의한 개정안으로, 약사 또는 한약사가 둘 이상의 약국을 개설·운영하지 못하도록 명확히 규정하는 내용입니다. 2026년 4월 23일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 종전의 "하나의 약국만을 개설할 수 있다"는 규정을 "어떠한 명목으로도 둘 이상의 약국을 개설하거나 운영할 수 없다"로 강화했고, 5월 26일 개정되어 11월 12일부터 시행됩니다
  • 핵심은 '개설' 명의뿐 아니라 '운영'까지 금지 대상에 넣었다는 점입니다. 앞으로 창고형 약국이 체인화·프랜차이즈화되거나 외부 사업자가 자금·인력·상품 구성·가격정책을 사실상 통제하는 경우, 누가 실질적 운영자인지를 둘러싼 논쟁이 본격화될 가능성이 큽니다

② 약국 명칭 제한법 (이미지 규제) — 8월 26일 본회의 통과

  • 남인순 의원이 2025년 10월 대표발의한 개정안으로, 의약품을 남용하게 만들 우려가 있는 표시를 약국 명칭으로 쓰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 2026년 4월 29일 보건복지위원회, 7월 29일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8월 26일 국회 본회의를 최종 통과했습니다
  • 시행 시점은 당초 '공포 후 6개월'에서 심사 과정을 거쳐 '공포 후 3개월'로 단축됐습니다. 이미 유사 명칭을 쓰거나 준비 중인 약국이 있는 상황에서 유예기간이 너무 길면 법 시행 전에 문제 명칭으로 개설할 여지가 생긴다는 점을 고려한 것입니다

참고로 이번 명칭 제한법 통과는 '네트워크약국 금지법', 비대면진료 플랫폼의 도매상 겸업을 제한하는 '닥터나우 방지법'에 이은 것으로, 최근 약사 관련 입법이 잇따라 마무리되는 흐름 속에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표현을 못 쓰게 되나

법률이 '창고형'을 콕 집어 금지한 게 아니라 포괄 근거만 두고 구체 표현은 복지부령으로 넘겼기 때문에, 실제 규제 대상은 시행규칙이 확정돼야 명확해집니다. 다만 방향성은 이미 여러 차례 드러났습니다.

  • 정은경 복지부 장관은 법사위에서 "'팩토리'와 '창고형', '최다·최고' 같이 국민을 혼동시킬 수 있는 명칭을 쓰는 약국이 있어 규제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습니다
  • 지난해 11월 복지부가 입법예고했던 약사법 시행규칙 개정안이 다시 주목받고 있는데, 여기엔 객관적 근거 없이 '최대', '최고', '최초' 같은 표현을 약국 고유명칭으로 쓰지 못하게 하는 신설 규정이 담겨 있습니다
  • 현행법도 이미 의약품 품목허가자나 도매상 영업소로 오인하게 할 명칭, 특정 의약품·질병을 전문 취급한다고 암시하는 표시, 의료기관과 혼동할 우려가 있는 표시 등은 금지하고 있습니다. 이번 개정은 여기에 '오남용 유도' 축을 새로 추가한 셈입니다

한 가지 짚어둘 건, 이번 입법의 핵심이 창고형 약국이라는 업태 자체를 막는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대형 매장이나 저가 판매를 금지하기보다, 소비자를 오인시키거나 의약품 과다 소비를 유도할 수 있는 표시·광고를 규제할 법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있습니다. 앞으로는 '창고형'·'공장형' 같은 표현뿐 아니라 과도한 할인 효과를 강조하는 문구, 대량구매를 유도하는 판촉 방식이 어떤 기준으로 제한될지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기존 약국은 간판을 당장 바꿔야 하나

이 부분이 실무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질문일 텐데요, 다행히 경과기간이 있습니다.

  • 현재 사용 중인 명칭이 복지부가 마련하는 제한 대상에 포함되면, 시행일부터 6개월의 경과기간이 주어지므로 이 기간 안에 명칭 변경 등의 조치를 하면 됩니다
  • 법 시행 전이라도 쓸 수 없는 표현에 대해서는 시·군·구 보건소를 통해 행정지도를 실시하도록 하는 부대의견이 반영됐습니다. 규제 공백기의 현장 혼선을 줄이려는 취지입니다

정리하면, 공포 후 3개월 뒤 법이 시행되고, 이미 문제 명칭을 쓰던 약국은 거기에 더해 6개월의 정비 기간을 갖는 구조입니다.


현장의 반응은 엇갈립니다

  • 대한약사회는 이번 본회의 통과에 대해 환영 입장을 냈습니다
  • 반면 메가팩토리 측은 앞서 "창고형 약국 명칭을 '미니'로 변경한다고 해서 본질이 바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규제가 본질적인 구매 방식 변화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내비쳤고, 2026년 하반기 3호점 개설 등 확장 계획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실제로 법사위 통과 바로 다음 날, 서울 강동역 인근에 '창고형 약국'을 전면에 내건 대형 약국이 영업을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법이 시장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을 그대로 보여주는 장면이었죠

정리하면, 창고형 약국 규제는 '운영 주체를 조이는 네트워크 약국 금지법(11월 12일 시행)'과 '이미지를 조이는 명칭 제한법(8월 26일 본회의 통과)'이 양 갈래로 완성 단계에 들어섰습니다. 명칭 규제는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진짜 승부처는 결국 돈의 흐름과 실질적 판매 주체가 누구냐, 그리고 앞으로 나올 시행규칙이 할인·대량판매 유도 행위를 어디까지 잡아낼 것이냐에 달려 있습니다. OTC·건기식 매대 전략을 짜는 입장에서도, 곧 마련될 복지부령 세부안은 반드시 챙겨봐야 할 대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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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최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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