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이건 왜 약이고 저건 왜 건기식이지?"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종합비타민 '센트룸'입니다. 지금은 마트·온라인·약국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대표 건강기능식품이지만, 원래 센트룸은 엄연한 일반의약품이었죠. 오늘은 이 센트룸이 왜 약에서 건기식으로 '옷을 갈아입었는지', 그 배경과 실무적 함의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같은 비타민이 왜 약도 되고 건기식도 되나
센트룸 얘기를 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똑같은 성분·함량의 비타민인데 어떤 건 일반의약품이고 어떤 건 건강기능식품입니다. 이게 왜 갈리느냐가 이번 글의 핵심 열쇠입니다.
- 식약처의 설명을 빌리면, 원료가 동일해도 '사용목적'에 따라 일반의약품으로도, 건강기능식품으로도 허가를 낼 수 있습니다. 공산품이 이용목적을 달리하면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죠
- 즉 치료·예방을 목적으로 약효를 인정받으면 일반의약품, 건강 유지·증진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기획하면 건강기능식품이 됩니다
- 이 차이는 표기·광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일반의약품 종합비타민은 '피로회복', '구내염 완화' 같은 구체적 효능을 쓸 수 있지만, 건기식은 '체내 에너지 형성에 필요',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처럼 간접적인 표현만 허용됩니다
정리하면, 비타민의 분류는 성분이 아니라 제약사가 제품을 어떤 목적으로 기획하고 허가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센트룸의 신분 변화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센트룸의 이력 - 1994년 일반약으로 데뷔, 2017년 건기식으로 전환
센트룸의 국내 이력을 시간순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 1994년: 국내에 일반의약품 멀티비타민으로 처음 출시. 오랫동안 화이자의 간판 OTC 브랜드였습니다
- 2017년: 일반의약품 품목허가를 취하하고 건강기능식품으로 전환. 이때부터 약국뿐 아니라 대형마트·온라인 등으로 유통 채널이 확 넓어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센트룸은 2004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적용 소급범위 이전에 이미 판매되던 품목이라, 다른 비타민들과 달리 자동으로 건기식 전환이 되지 않은 채 계속 일반의약품으로 남아 있던 케이스였습니다. 즉 처음부터 '약으로 있을 수밖에 없던' 태생적 배경이 있었던 셈이죠.
핵심 - 왜 굳이 건기식으로 바꿨나 (직구·분류 차이 문제)
그럼 잘 팔리던 일반의약품을 왜 건기식으로 바꿨을까요? 결정적 방아쇠는 국내와 국외의 제품 분류 차이,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직구 민원이었습니다.
- 센트룸은 국내에서는 일반의약품이었지만, 미국·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는 식품 혹은 식이보충제(dietary supplement)로 유통됩니다. 실제로 종합비타민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으로도 '음식의 한 종류'로 인정되고, 미국에서도 식이보충제로 분류되죠
-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반입하거나 직구로 센트룸을 사들이는 사례가 꾸준히 늘었고, "해외에서 식품으로 산 제품을 들여오는 게 왜 문제냐"는 민원이 계속 제기됐습니다
- 국내에서는 의약품이라 직구·통관 규제를 받는데, 원 판매국에서는 식품이니 소비자 입장에선 납득이 안 되는 구조였던 겁니다
- 화이자가 확인해보니, 국내 수입의약품 중 해외와 국내 분류가 이렇게까지 확연히 다른 제품은 센트룸이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결국 화이자는 이 '한 몸 두 신분' 상태에서 벌어지는 통관·직구 혼선과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분류를 아예 해외와 같은 '식품(건기식)'으로 맞추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2017년 건기식 전환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전환의 '숨은 이득' - 유통 채널 확대
명분은 직구·분류 문제 해소였지만, 실무 관점에서 보면 건기식 전환에는 분명한 부수 효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통 채널의 대폭 확대입니다.
- 일반의약품은 오직 약국에서만 팔 수 있습니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이 되면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몰, 홈쇼핑까지 판매처가 활짝 열립니다
- 센트룸은 일반약 시절 '고가격·저마진'에 지명구매율이 높은, 이른바 약국 필수 구성품으로 포지셔닝돼 있었습니다. 마진은 박한데 안 갖다 놓을 수는 없는 품목이었죠
- 건기식 전환은 이 브랜드를 약국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꺼내 소비자 접점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즉 '직구 민원 해소'라는 정당한 명분과 '채널 확장'이라는 사업적 실익이 맞아떨어진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국 입장에서는 - 계륵이 된 지명 품목
여기서 실무적으로 짚어야 할 게 약국가의 반응입니다. 채널이 넓어진다는 건 뒤집어 보면 약국의 독점 판매권이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 건기식 전환 이후 센트룸이 마트·온라인에 풀리면서, 약국 판매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다만 지명도가 워낙 높은 품목이라 약국 입장에선 안 갖다 놓기도 애매한 '계륵' 신세가 됐죠
- 화이자(이후 GSK컨슈머헬스케어)는 이런 반발을 의식해 약국 전용 라인('센트룸 프로', '센트룸 실버프로' 등)을 별도로 공급하는 투트랙 전략을 폈습니다. 마트용과 약국용을 나눠 채널 갈등을 완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그럼에도 소비자 입장에선 센트룸이 일반약인지 건기식인지 허가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회사의 가격·반품 정책이 약국 안착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됐습니다
이 대목은 앞서 다뤘던 '창고형 약국' 이슈와도 통합니다. 건기식이 약국 밖으로 나가 마트·온라인과 경쟁하는 순간, 동네 약국의 매출 방어가 화두가 된다는 점에서 결이 비슷하죠.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센트룸 사례가 OTC·건기식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분류는 '성분'이 아니라 '허가 전략'이다: 같은 종합비타민이라도 치료 목적으로 갈지, 건강 증진 목적으로 갈지에 따라 신분이 바뀝니다. 신제품 기획 단계에서 어느 트랙을 탈지가 곧 채널·광고 전략을 결정합니다
- 채널과 규제는 세트로 움직인다: 일반약은 약국 독점이라는 보호막이 있는 대신 채널이 좁고, 건기식은 채널이 넓은 대신 경쟁이 무한대입니다. 어느 쪽이 브랜드에 유리한지는 품목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 글로벌 분류와의 정합성도 변수다: 해외에서 식품인데 국내에서만 의약품이면 직구·병행수입 문제가 상시 발생합니다. 글로벌 브랜드일수록 국내외 분류를 맞추는 게 관리 비용을 줄이는 길일 수 있습니다
- 전환에는 '구제품 처리' 부담이 따른다: 실제로 센트룸도 전환 과정에서 약국이 보유한 구 일반약 재고 판매·반품 문제가 두고두고 잡음이 됐습니다. 분류를 바꾸는 결정에는 기존 유통 재고 정리 계획이 반드시 함께 서야 합니다
정리하면, 센트룸의 건기식 전환은 단순히 "약을 식품으로 격하시킨" 사건이 아니라, 국내·국외 분류 차이에서 비롯된 직구 민원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유통 채널을 넓힌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비타민의 신분은 성분이 아니라 사용목적과 허가 전략이 결정한다는 점, 그리고 그 결정이 곧 채널·광고·약국 관계까지 연쇄적으로 바꾼다는 점을 센트룸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뭅니다. OTC와 건기식의 경계에서 제품을 기획하는 실무자라면, '이 제품을 어느 옷을 입혀 내보낼 것인가'를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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