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요즘 부쩍 회의 자료에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물적분할'입니다. 그것도 공장이나 연구소가 아니라 영업·마케팅 부문만 콕 집어 떼어내는 방식이죠. 바로 지난 9월 15일, 보령이 전문의약품 영업·마케팅을 전담하는 커머셜 법인 '보령파마솔루션' 설립을 위한 물적분할을 이사회에서 결의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생산·R&D는 모회사에 남기고 파는 조직만 별도 회사로 세우겠다는 건데요. 오늘은 제약사가 왜 하필 '영업·마케팅'만 떼어내는지, 그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 성공·실패 사례를 실무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물적분할이 뭔가 — 인적분할과 헷갈리지 말자
개념부터 짚겠습니다. 회사를 쪼개는 방식은 크게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두 가지입니다.
- 물적분할(物的分割)은 기존 회사가 특정 사업부를 떼어 신설 회사를 세우고, 그 신설 회사의 지분 100%를 모회사가 그대로 갖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모회사 → 자회사' 수직 구조가 됩니다. 기존 주주는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직접 받지 못하고, 모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소유하게 됩니다
- 인적분할(人的分割)은 반대로 기존 주주가 지분율대로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직접 나눠 갖는 방식입니다. 두 회사가 나란히 서는 수평 구조에 가깝죠
- 우리 상법은 인적분할을 원칙으로 하고 물적분할을 예외로 두고 있지만, 실무에서는 물적분할이 훨씬 자주 쓰입니다. 대주주가 지분 희석 없이 지배력을 유지한 채 자회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보령 사례도 정확히 이 물적분할입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은 보령이 지분 100%를 보유하는 완전자회사로, 2026년 10월 주주총회를 거쳐 2027년 1월 출범할 예정입니다.
왜 하필 '영업·마케팅'만 떼어내나 — 4가지 이유
공장도 연구소도 아니고, 왜 파는 조직만 별도 법인으로 세울까요? 실무적으로 보면 이유가 분명합니다.
- ① 커머셜 전문화 —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 생산·R&D와 영업·마케팅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하나의 회사 안에 섞여 있으면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자원 배분도 애매해집니다. 영업·마케팅 인력을 한 법인에 결집시키면 커머셜에만 특화된 조직·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보령이 신설 법인을 '대한민국 최고 커머셜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한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 ② 외부 도입품목(라이선스인) 확대: 이게 핵심입니다. 자사 제품만으로는 영업조직의 '판매 총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별도 커머셜 법인을 두면 국내외 블록버스터 품목을 적극적으로 도입(license-in)해 판매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쉽습니다. 실제로 보령파마솔루션은 자사 처방품목에 더해 외부 도입 품목을 늘려 국내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영업조직을 '우리 약만 파는 곳'에서 '잘 파는 것 자체가 사업인 곳'으로 바꾸는 겁니다
- ③ 성과 중심 보상체계 설계: 제조·연구직과 영업직을 같은 잣대로 평가·보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업만 따로 떼면 처방실적에 연동한 강력한 인센티브 체계를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영업·마케팅 인재를 끌어모으는 유인책이 되죠
- ④ 사업별 가치의 독립 평가: 생산·R&D는 장기 투자와 파이프라인으로 평가받고, 커머셜은 매출·이익률로 평가받습니다. 두 사업을 분리하면 각 사업의 가치를 시장에서 별도로 인정받을 여지가 생깁니다
정리하면, 영업·마케팅 분할의 본질은 '파는 일'을 하나의 독립 사업으로 승격시켜 전문성과 외형을 동시에 키우는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장점 — 속도, 집중, 그리고 확장성
앞의 이유와 겹치지만, 분할이 주는 실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의사결정 속도: 분리된 법인의 대표는 커머셜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커집니다. 모회사의 복잡한 지배구조 속에서 결재가 지연되던 문제를 피할 수 있죠
- 전문 인력 확보와 성과보상: 영업에 특화된 회사라는 정체성이 생기면 관련 인재 영입이 수월하고, 실적 기반 보상 설계도 자유롭습니다
- 모회사 신용도 활용: 신설 자회사는 독립 법인이지만 초기에는 모회사의 신용과 브랜드를 그대로 업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금 조달과 도입품목 협상에서 유리하죠
- 포트폴리오 확장의 유연성: 외부 품목 도입, 다른 제약사와의 공동판매 제휴 등을 '커머셜 회사' 단위로 빠르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단점 — '쪼개기 상장' 그림자와 조직 리스크
여기까지만 보면 좋은 전략 같지만, 물적분할에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그림자가 있습니다.
- ① 쪼개기 상장 논란: 물적분할의 최대 리스크입니다. 알짜 사업부를 자회사로 떼어낸 뒤 그 자회사를 별도 상장(IPO)하면, 기존 주주는 정작 그 사업의 상장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의 사업이 모회사·자회사 두 곳에서 동시에 평가받는 '더블카운팅' 탓에 오히려 모회사 주가가 눌리는 '지주사 할인' 현상도 나타납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서도 모·자회사 동시상장 시 양쪽 기업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보령이 발표 즉시 "매각·분할상장 계획은 전혀 없다"고 못 박은 것도 이 우려를 의식한 겁니다
- ② 주주가치 훼손 우려: 핵심 사업을 떼어감에도 기존 주주가 신설법인 지분을 받지 못하는 구조 자체가 반발을 부릅니다. 상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알짜를 왜 떼느냐"는 불만은 남습니다
- ③ 조직·인력 동요: 영업·마케팅 인력이 통째로 다른 법인으로 이동합니다. 근로조건을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소속이 바뀌는 데서 오는 불안과 이탈 가능성은 상존합니다
- ④ 계열사 간 거래·정합성 문제: 모회사(생산)와 자회사(판매)로 나뉘면 두 법인 간 내부거래가 발생합니다. 이전가격, 공급단가, 연결 실적 인식 등 관리 포인트가 늘어나고, 자칫 '한 몸이었을 때보다 비효율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 사례 ① — 동아제약(박카스·OTC) 물적분할
파는 사업을 떼어내 키운 대표적 성공 사례는 동아제약입니다.
- 동아제약은 2013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박카스와 일반의약품(OTC) 사업을 비상장 자회사 '동아제약'으로 물적분할했습니다(전문의약품은 동아에스티로 인적분할, 존속법인은 동아쏘시오홀딩스로 전환)
- 분사 첫해인 2013년 2,897억 원이던 매출은 이후 꾸준히 우상향해 2022년 5,430억 원, 2023년 6,31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소비자 접근성을 강화한 편의점용 박카스, 오쏘몰, 피부외용제(노스카나겔 등) 라인업이 성장을 이끌었죠
- 최근에는 오펠라헬스케어로부터 둘코락스·알레그라 등 OTC 4개 품목의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따내며 '자사에 없던 품목을 글로벌 브랜드로 채우는' 커머셜 확장 전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아제약 사례의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소비자 대상 판매(OTC)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키면, 채널·브랜드·도입품목 전략을 훨씬 공격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이 그리는 그림과 결이 통하죠.
성공 사례 ② — 종근당 지주사 전환(사업부문 전문화)
방식은 인적분할이지만, '사업부문 분리를 통한 전문화'라는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 종근당은 2013년 투자사업부문(종근당홀딩스)과 의약사업부문(종근당)을 분할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목적은 사업부문별 독립 경영과 책임경영 체제 확립, 핵심사업 집중 투자였죠
- 이후 지주사 종근당홀딩스는 자회사 종근당건강의 프로바이오틱스 '락토핏'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매출이 5년 새 4배 가까이 커졌습니다. 각 사업부문이 독립적으로 자기 시장을 공략한 결과입니다
핵심은 사업을 성격별로 나누면 각자의 성장 엔진이 따로 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회사 안에 묶여 있을 때는 묻혀 있던 사업이 독립하면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패(반면교사) 사례 ① — JW중외제약 CSO, 1년 만에 철수
반대로, '파는 기능을 밖으로 빼는' 시도가 기대만큼 안 된 사례도 있습니다. 물적분할과 법적 형태는 다르지만, '영업 기능 외부화'라는 큰 틀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합니다.
- JW중외제약은 비주력 제네릭 품목을 대상으로 영업대행(CSO) 체제를 도입했지만, 수익성과 효율성이 기대에 못 미쳐 약 1년여 만에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 업계에서는 "혁신형 제약기업이 아닌 회사의 경우 CSO 운영이 오히려 수익성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고, 실제로 종근당도 과거 CSO 확대를 검토했다가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영업을 별도 조직·법인으로 떼어내는 것 자체가 만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떼어낸 조직이 충분한 물량(도입품목·자사품목)과 수익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면, '전문화'가 아니라 '비용 분산'에 그칠 수 있습니다. 보령이 도입품목 확대와 점유율 10%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커머셜 법인이 살려면 팔 물건이 계속 채워져야 하니까요.
실패(반면교사) 사례 ② —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후 주가 논란
제약은 아니지만, 물적분할의 위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LG화학은 2020년 배터리 사업(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한 뒤 상장시켰습니다. 그런데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알짜 배터리 사업의 상장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했고, 모회사 주가는 부진에 빠지면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크게 일었습니다
- 이 사례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 쪼개기 상장'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대중에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한국 증시 전반에서 물적분할에 대한 감시가 강해졌죠
교훈은 분명합니다. 분할 자체보다 '분할 이후 상장 여부'가 시장 신뢰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보령이 이번에 "분할상장 계획 없음"을 반복 강조한 것은, 바로 이 LG화학 학습효과를 정확히 겨냥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영업·마케팅 물적분할 이슈가 OTC·커머셜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파는 일'이 독립 사업으로 승격되는 흐름을 읽어야 한다: 자사품목만 파는 영업에서, 외부 도입품목까지 얹어 '판매 역량 자체를 상품화'하는 커머셜 플랫폼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도입품목(LI) 소싱, 공동판매 제휴 감각을 길러두는 게 좋습니다
- 분할의 성패는 '팔 물건'과 '보상'이 좌우한다: JW중외제약 사례처럼, 떼어낸 조직에 충분한 물량과 성과보상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문화는 공염불입니다
- 시장은 '상장 여부'를 본다: 물적분할 뉴스가 나오면 반드시 '분할상장 계획이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회사 IR·홍보 메시지를 짤 때도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대주주·소액주주 신뢰를 가릅니다
- 내부거래 설계를 미리 챙겨라: 생산 모회사와 판매 자회사로 나뉘면 공급단가·이전가격·연결 실적 인식이 곧바로 실무 이슈가 됩니다. 분할 전에 계열사 간 거래 구조를 명확히 세워둬야 합니다
정리하면, 제약사가 영업·마케팅만 물적분할하는 것은 단순히 조직을 쪼개는 게 아니라, '파는 일'을 전문 사업으로 독립시켜 커머셜 전문성과 외형을 동시에 키우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동아제약처럼 소비자 판매 사업을 독립시켜 성공한 사례도, JW중외제약처럼 영업 외부화가 기대에 못 미친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의 뒤에는 LG화학이 남긴 '쪼개기 상장' 학습효과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이 "매각·분할상장 계획 없음"을 거듭 강조한 것도 그래서죠. 결국 영업·마케팅 분할의 성패는 '얼마나 잘 떼어냈느냐'가 아니라 '떼어낸 조직이 팔 물건을 계속 채우고, 시장의 신뢰를 지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