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8 06:08

Recent Post

Recent Comment

Archive

반응형
2026. 9. 17. 23:12 제약 관련
반응형

일반의약품(OTC) 업무를 하다 보면, 사실 우리 일상과 가장 가까이 붙어 있는 제도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편의점 상비약'이죠. 밤 11시에 갑자기 열이 오르거나, 명절 연휴에 체했을 때, 문 닫은 약국 대신 편의점에서 타이레놀이나 판콜에이를 집어본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그런데 이 편의점 상비약, 지금 살 수 있는 게 딱 11개뿐이라는 사실은 잘 모르는 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바로 지금, 정부가 이 품목을 최대 20개까지 늘리는 '14년 만의 개편'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非)업계 분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편의점 상비약이 대체 뭔지, 왜 지금 확대 이야기가 나오는지, 그리고 무엇이 쟁점인지를 하나씩 정리해보겠습니다.

*이미지 출처: AI 생성(ChatGPT)


먼저, 편의점 상비약이 뭔가 — 2012년에 생긴 '심야·공휴일용 약'

개념부터 짚겠습니다. 정식 명칭은 안전상비의약품입니다. 이름 그대로 '안전하게 상비(常備)해 둘 수 있는 약', 즉 약사의 복약지도 없이도 비교적 안전하게 쓸 수 있다고 인정된 일반의약품을 말합니다.

  • 이 제도는 2012년 11월 15일 시행됐습니다. 약국이 문을 닫는 밤늦은 시간이나 공휴일에 급하게 약을 사기 어렵다는 불편을 해소하자는 취지였죠
  • 그래서 24시간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약사 없이도 이 약들을 팔 수 있게 한 겁니다
  • 다만 아무 약이나 되는 건 아닙니다. 약사법은 함량·제형·부작용·인지도·편의성 등을 고려해 20개 품목 이내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이 '고시'로 지정하도록 정해두고 있습니다

정리하면, 편의점 상비약은 '접근성(편의)'과 '안전성' 사이에서 딱 20개라는 상한선을 그어두고 출발한 제도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 20개라는 숫자가 이번 이야기의 핵심 열쇠입니다.


지금은 왜 11개인가 — 원래 13개였는데 2개가 빠졌다

여기서 많은 분이 헷갈리는 지점이 있습니다. "20개까지 된다면서 왜 지금은 11개밖에 없지?"라는 거죠. 그 사연은 이렇습니다.

  • 2012년 제도 시행 당시 지정된 품목은 4개 효능군, 총 13개였습니다. 구체적으로 해열진통제, 감기약, 소화제, 파스(붙이는 약) 네 종류였죠. 우리가 아는 타이레놀정, 판콜에이내복액, 훼스탈, 신신파스 같은 익숙한 이름들이 여기 포함됐습니다
  • 그런데 이후 어린이용 타이레놀정 80mg과 타이레놀정 160mg 2개 제품의 생산이 중단되면서, 실제로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품목은 13개 → 11개로 줄어든 겁니다
  • 즉, 정부가 11개로 줄인 게 아니라 '단종으로 자연 감소'한 상태로, 법이 허용한 20개의 절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거죠

더 중요한 건, 이 목록이 2012년 이후 14년째 단 한 번도 재조정되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품목을 손보기 위한 '안전상비의약품 지정심의위원회'가 2017~2018년에 6차례 열렸지만 결론 없이 흐지부지됐고, 그 뒤로는 위원회 자체가 열리지 못했습니다. 제도는 멈춰 있는데 소비자 수요는 계속 쌓여온 셈입니다.


이번 개편의 핵심 — 무엇이 달라지나 (두 갈래로 보자)

정부가 이번에 추진하는 개편은 사실 성격이 다른 두 가지가 묶여 있습니다. 섞어서 보면 헷갈리니 나눠서 정리하겠습니다.

① 품목 확대 — 11개 → 최대 20개

  • 보건복지부는 2026년 하반기 중점 추진과제로, 편의점 상비약을 현행 11개에서 법정 한도인 최대 20개까지 늘리겠다고 밝혔습니다
  • 핵심은 이 품목 확대가 국회 법 개정 없이, 복지부 장관의 '고시' 개정만으로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정부가 지정심의위원회를 열어 품목을 정한 뒤 고시만 고치면 되는 구조죠
  • 정부는 연내(2026년 12월 목표) 지정 고시를 개정한다는 계획입니다

② 판매점 확대 — '무약촌'의 일반 소매점까지

  • 두 번째 축은 파는 '장소'를 넓히는 겁니다. 약국도, 24시간 편의점도 없는 이른바 '무약촌(보건의료취약지역)'에서는 24시간이 아닌 일반 소매점에서도 상비약을 팔 수 있게 하겠다는 방향입니다
  • 농어촌·섬 지역처럼 밤에 해열제 하나 사기 어려운 곳의 의료 공백을 메우자는 취지죠
  • 다만 이건 품목 확대와 달리 약사법 개정이 필요해서, 고시만으로 되는 품목 확대보다 넘어야 할 문턱이 높습니다

정리하면, '무엇을(품목)'과 '어디서(판매점)'를 동시에 넓히는 게 이번 개편의 그림입니다. 그리고 둘 중 실제로 빠르게 진행될 가능성이 큰 건, 절차가 간단한 품목 확대 쪽입니다.


그래서 어떤 약이 추가될까 — 지사제·제산제·화상연고·인공눈물

가장 궁금한 대목일 겁니다. 아직 확정된 건 없지만, 과거 논의와 소비자 수요 조사를 보면 후보군의 윤곽은 어느 정도 드러나 있습니다.

  • 과거 지정심의위원회에서 우선 검토됐던 후보는 제산제(위산 억제), 지사제(설사 완화), 항히스타민제(알레르기약), 화상연고 등입니다
  • 여기에 소비자 설문에서 꾸준히 요구가 많았던 인공눈물, 소독약, 증상별 감기약, 어린이 진통제 등도 거론됩니다
  • 방향은 크게 둘입니다. 하나는 기존 해열진통제·감기약의 종류를 늘리는 것, 다른 하나는 아예 새로운 효능군(지사제·화상연고 등)을 추가하는 것이죠

다만 여기서 안전성 논쟁이 갈립니다. 예를 들어 지사제나 알레르기약은 증상만 보고 함부로 쓰면 오히려 병을 키우거나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있습니다. '편의'와 '안전'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지점이 바로 이 품목 선정 단계입니다.

*이미지 출처: AI 생성(ChatGPT)

 


왜 하필 지금, 다시 꺼냈나

14년이나 멈춰 있던 논의가 왜 지금 다시 불붙었을까요? 배경은 이렇습니다.

  • 무약촌 실태 고발이 컸습니다: 약국도 24시간 편의점도 없는 지역 주민들이 심야·휴일에 기본적인 해열제·지사제조차 구하지 못하는 실태가 여러 차례 보도되며 사회적 공감대가 쌓였습니다
  • 공공심야약국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대안으로 거론되는 '공공심야약국' 확충은 예산 부담이 크고 전국을 다 덮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미 전국 곳곳에 있는 편의점을 활용하자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죠
  • 소비자 만족도가 높습니다: 편의점 상비약 제도 자체는 소비자 만족도가 매우 높은 편입니다. '실질적으로 도움이 됐다'는 응답이 압도적이라, 품목만 늘리면 체감 효용이 바로 커지는 구조입니다

여기에 정부가 비대면진료 제도화, 의약품 배송 확대 같은 '접근성 강화' 정책을 한꺼번에 밀면서, 편의점 상비약 확대도 그 흐름에 함께 올라탄 모양새입니다.


찬반 — '편의' vs '안전'의 14년째 평행선

이 이슈의 진짜 재미(이자 어려움)는 이해관계가 정면으로 엇갈린다는 데 있습니다. 입장별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소비자·시민단체: "품목이 너무 적다"는 입장입니다. 경실련 등은 살 수 있는 일반의약품이 9,000개가 넘는데 상비약을 20개 안에 가둬둔 것 자체가 답답하다며, 나아가 개별 제품이 아니라 '성분명' 기준으로 지정해 선택권을 더 넓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약사단체(대한약사회): 강하게 반대합니다. 의약품은 일반 공산품과 달라 복약지도가 필요하고, 오남용·부작용 우려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지금도 편의점의 상비약 판매 관리(판매 시간·수량 규정 등)가 제대로 안 지켜지는데, 관리 보완 없이 품목만 늘리는 건 위험하다"고 지적합니다. 대안으로는 공공심야약국 확충을 내세우죠
  • 편의점업계: 의외로 매출 욕심은 크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상비약 매출은 전체의 0.1% 수준"이라며, 매출보다 24시간 운영이라는 공공성 차원에서 접근한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2026년 하반기 들어 대한약사회는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리고, 서울·경기 등 지역 약사회가 집단 반발에 나서며 '연내 궐기대회'까지 예고한 상태입니다. 품목 확대가 장관 고시만으로 가능하다는 점, 즉 국회의 견제 장치 없이 정부 의지만으로 밀어붙일 수 있다는 구조를 약사사회가 가장 경계하고 있습니다.


소비자·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이 이슈가 소비자와 OTC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소비자) 아직 '확정'이 아니다: 뉴스 제목만 보면 곧 20개가 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지정심의위원회 논의와 고시 개정을 거쳐야 합니다. 품목 확대는 연내 목표, 판매점 확대는 법 개정 사안이라 시점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 (소비자) 늘어도 '무제한'은 아니다: 확대돼도 법정 상한은 20개입니다. 편의점이 동네 약국을 대체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심야·휴일 응급용'이라는 제도 취지는 그대로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 (실무자) 어떤 효능군이 뚫리느냐가 관건: 만약 지사제·화상연고·인공눈물 같은 새 효능군이 편의점에 들어오면, 해당 카테고리 OTC의 채널 전략이 통째로 바뀝니다. 약국 독점이던 매출이 편의점으로 분산되기 때문이죠. 자사 품목이 후보군에 있다면 지금부터 시나리오를 짜둬야 합니다
  • (실무자) '관리·안전' 명분을 함께 챙겨라: 확대의 최대 걸림돌이 '안전성·관리 부실' 논리인 만큼, 제조사·유통사 입장에서도 포장·표기·판매관리 협조 등 안전 이슈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는 게 통과 가능성을 높이는 길입니다

정리하면, 편의점 상비약 확대는 단순히 '약 몇 개 더 파는' 문제가 아니라, 14년 묵은 제도를 손봐 국민의 심야·휴일 의약품 접근성을 넓히려는 시도입니다. 소비자와 시민단체는 "품목이 너무 적다"며 확대를, 약사단체는 "안전이 먼저"라며 신중론을 외치는 팽팽한 구도가 14년째 이어지고 있죠. 정부는 연내 지정심의위원회를 열어 12월 고시 개정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어떤 약이 실제로 편의점 매대에 오를지, 그리고 무약촌 판매점 확대를 위한 약사법 개정까지 갈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입니다. 다음에 편의점에서 상비약 매대를 지나칠 때, "여기 있는 게 왜 딱 이만큼일까, 그리고 앞으로 뭐가 더 들어올까?"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우리 일상과 가장 가까운 이 제도의 변화가, 생각보다 큰 파장을 몰고 올 수 있으니까요.


https://hychoi.tistory.com/6

반응형
posted by 최오리
2026. 9. 17. 23:05 제약 관련
반응형

제약 정책 뉴스를 챙기다 보면 어떤 이슈는 몇 년째 '입법 공백'이라는 꼬리표만 달고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속도가 붙습니다. 바로 '미프진'이 그렇습니다. 지난 9월 16일, 성평등가족부가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신중지 약물의 정식 도입 방안을 발표하면서, 2019년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7년 가까이 제도권 밖을 떠돌던 이 약이 마침내 공식 궤도에 오르게 됐습니다. 이르면 내년(2027년) 1분기부터 국내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을 전망이죠. 오늘은 미프진이 대체 무슨 약인지, 그리고 왜 하필 지금 도입되는지를 실무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미프진이 뭔가 — 성분부터 짚자

이름은 익숙한데 정확한 정체는 헷갈리는 분들이 많습니다. 개념부터 정리하겠습니다.

  • 미프진(Mifegyne)은 임신 초기에 복용하는 경구용 임신중지(약물적 임신중단) 의약품입니다. '먹는 낙태약'으로 더 잘 알려져 있죠. 단일 성분이 아니라 두 가지 약을 순차적으로 쓰는 복합요법이 핵심입니다
  • 미페프리스톤(mifepristone)은 임신 유지에 필요한 호르몬(프로게스테론)의 작용을 차단합니다. 임신을 지탱하던 스위치를 끄는 역할이죠
  • 미소프로스톨(misoprostol)은 자궁 수축을 유도해 임신 조직의 배출을 돕습니다. 미페프리스톤을 먼저 복용한 뒤 일정 시간 후 미소프로스톨을 쓰는 방식입니다
  • 이번에 국내 허가 심사 중인 제품은 현대약품의 '미프지미소정'으로, 미페프리스톤 1정과 미소프로스톨 4정이 한 세트로 구성돼 있습니다

역사도 짚어둘 만합니다. 미프진은 1988년 프랑스에서 세계 최초로 허용된 이후 현재 80~100여 개국에서 합법적으로 쓰이고 있고, 세계보건기구(WHO)도 2005년 이를 필수의약품(Essential Medicines)으로 지정했습니다. 즉, 국제적으로는 이미 수십 년간 검증되고 표준화된 약이라는 뜻입니다. 국내 도입이 '새로운 약을 들여오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미 세계가 쓰는 약을 왜 우리만 못 쓰고 있었느냐'의 문제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왜 지금 도입되나 ① — 7년 입법 공백이라는 배경

미프진이 그동안 국내에 들어오지 못한 근본 원인은 약의 문제가 아니라 법의 공백이었습니다. 이 대목이 이번 이슈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입니다.

  •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자기낙태를 처벌하는 형법 조항(제269·270조)에 대해 헌법불합치 4 대 단순위헌 3 대 합헌 2 의견으로 헌법불합치를 결정하고, 2020년 말까지 대체입법을 마련하라고 주문했습니다
  • 그러나 국회는 시한(2020년 12월 31일)을 넘겼고, 결국 2021년 1월 1일부로 낙태죄 형법 조항은 자동 효력 상실됐습니다. 처벌 조항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를 채울 새 법(모자보건법 개정 등)은 만들어지지 않았죠
  • 그 결과 임신중지는 '처벌하지도, 제대로 허용·관리하지도 않는' 회색지대에 5년 넘게 방치됐습니다. 처벌 근거가 없으니 임신중지 자체는 가능한데, 정작 약물은 국가 관리체계 밖에 있는 기묘한 상태가 이어진 겁니다

정리하면, 약이 없어서가 아니라 약을 담을 법적 그릇이 비어 있어서 미프진이 들어오지 못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왜 지금 도입되나 ② — 음성 유통과 대통령 지시, 법제처 유권해석

법이 비어 있는 사이, 수요는 사라지지 않고 지하로 스며들었습니다. 이 '음성 유통' 문제가 이번 도입의 직접적 방아쇠가 됐습니다.

  • 국내 미허가 상태에서도 미프진은 텔레그램 등 온라인을 통해 30만~50만 원대에 불법 거래돼 왔습니다. 정품 여부를 확신하기 어렵고, 의료진의 복약 지도나 부작용 관리도 없이 여성들이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구조였죠
  • 정부 차원의 도입 논의에 속도가 붙은 결정적 계기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였습니다. 7월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은 "해외 직구로 복용하다 사고도 나는데 이렇게 방치하는 게 옳지 않다"며 "법 개정 전이라도 식약처가 약물을 허용하면 되는 것 아닌가"라고 언급했습니다
  • 이에 식약처는 법제처에 '현행 모자보건법 체계에서 임신중지 약물의 품목허가가 가능한지'를 질의했고, 법제처는 지난달(8월) 19일 "법 개정 전에도 품목허가가 가능하다"는 유권해석을 내놨습니다. 안전성·유효성 등 허가 요건만 갖추면 현행 법체계 안에서도 허가할 수 있다는 취지였죠

이 유권해석이 그동안 막혀 있던 빗장을 푼 셈입니다. 대체입법이라는 큰 산을 넘기 전에, 행정적 해석으로 먼저 약을 제도권에 편입시키는 우회로를 찾아낸 거죠. 도입의 명분이 '여성 건강권'과 '음성 유통에 따른 안전 우려 해소'라는 두 축으로 정리되는 이유입니다.


현대약품의 '3수' 도전 — 세 번째 만에 본심사

이번 도입의 실무 주역은 현대약품입니다. 사실 이 회사의 도전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 현대약품은 2021년 영국 제약사 라인파마 인터내셔널과 미프지미소의 국내 독점 판권·공급 계약을 맺고 품목허가에 나섰습니다
  • 하지만 1차(2021년)·2차(2023년 3월) 신청은 자료 부족과 법률 공백의 벽에 막혔습니다. 허가 요건 자료 중 일부가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을 전제로 해야 심사가 가능해, 절차가 잠정 중단됐죠
  • 이후 회사는 2024년 12월, 임신 63일(9주) 이내 사용을 조건으로 세 번째 품목허가를 신청했고, 식약처는 현재 이 건을 심사 중입니다. 식약처는 심사가 상당 부분 진행됐으며, 위해성 관리계획(RMP) 등 일부 보완 사항이 남아 있다고 밝혔습니다

두 차례 좌절 끝에 세 번째 신청이 결실을 앞두게 된 배경에는, 앞서 짚은 '법제처 유권해석'이라는 제도적 물꼬가 있었습니다.


도입 방안의 구체적 그림 — 9주 이내·초기 2년 원내조제

정부가 발표한 관리 방식은 상당히 신중합니다. 한 번에 문을 활짝 여는 게 아니라 단계적으로 풀겠다는 구상입니다.

  • 사용 대상: 임신 9주(63일) 이내 임신부. 참고로 WHO는 12주 이내 사용을 제시하지만, 국내 신청 제품이 9주 이내를 대상으로 한 임상시험 자료로 허가를 신청했기 때문에 이 기준으로 심사가 진행됩니다
  • 초기 2년: 의료기관 내에서 의사가 직접 처방하고 조제하는 '원내조제' 방식으로 관리합니다. 부작용과 안전성을 모니터링하기 위한 조치죠
  • 이후 단계: 안전성이 확인되면 '의사 처방 + 약국 조제' 방식으로 관리 범위를 넓히는 방안을 검토합니다
  • 도입 시점: 이르면 내년(2027년) 1분기 목표. 다만 실제 시점은 식약처 허가·심사, 수입 절차(라벨·안전성 검사·품질 검사·물량 확보), 그리고 건강보험 적용 여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미정 사항: 건강보험 적용 여부와 약가, 처방 가능한 의사의 구체적 범위, 미성년자의 보호자 동의 여부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즉, '허가'와 '실제 유통'은 별개라는 점을 짚어둘 필요가 있습니다. 품목허가가 나더라도 수입 절차와 건보 등재라는 관문이 남아 있어, 실제 처방까지는 시차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엇갈리는 시선 — 여성계·의료계·종교계

이 사안은 순수한 제약 이슈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가 첨예하게 부딪히는 영역이기도 합니다. 실무자라면 이 온도차를 알고 있어야 합니다.

  • 여성계(프로초이스 진영)는 저렴하고 안전한 합법 약물의 도입을 환영하는 입장입니다. 음성 유통에 내몰리던 여성의 건강권과 선택권을 제도적으로 보장하게 됐다는 평가죠
  • 의료계는 신중론을 폅니다. 부작용 관리, 처방 의사의 법적 책임, 허용 기준의 미비 등을 이유로 충분한 안전장치가 먼저라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 종교계(프로라이프 진영)는 생명 존중의 관점에서 도입 자체에 우려를 표합니다

정부가 초기 2년을 원내조제로 묶고, 미성년자 동의 요건 등을 별도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런 입장 차이를 의식한 완충 장치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약물 허가와 별개로 모자보건법 등 후속 입법이 뒷받침돼야 이 회색지대가 온전히 정리된다는 점은 변하지 않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미프진 도입 이슈가 제약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법 개정'이 아니라 '유권해석'으로 열린 문이라는 점을 기억하자: 이번 도입은 대체입법 없이 법제처 해석으로 우회한 케이스입니다. 후속 입법이 완결되지 않은 만큼, 향후 국회 논의 결과에 따라 허용 기준·관리 방식이 다시 흔들릴 여지가 있습니다. 정책 리스크가 상존하는 품목이라는 뜻이죠
  • 음성 유통의 '제도권 편입'이라는 시장 형성 논리: 그동안 지하에서 30만~50만 원대에 돌던 수요가 정식 시장으로 올라옵니다. 건보 등재 여부와 약가 산정이 실제 접근성과 시장 규모를 좌우할 핵심 변수입니다
  • 원내조제 → 약국조제 확대라는 유통 단계 설계: 초기 2년 원내조제 관리는 위해성 관리계획(RMP)과 맞물린 전형적인 '고위험 신규 도입 약물' 관리 모델입니다. 이후 약국 조제로 넘어가는 시점의 유통·공급 설계가 실무 관전 포인트입니다
  • 허가와 출시의 시차를 구분하라: 품목허가 완료가 곧 처방 개시는 아닙니다. 수입 안전성·품질 검사, 물량 확보, 건보 적용 절차까지 끝나야 실제 유통이 시작됩니다. 도입 일정을 볼 때는 '허가 시점'과 '유통 시점'을 반드시 나눠서 봐야 합니다

정리하면, 미프진의 정식 도입은 단순히 '새 약 하나가 들어온다'는 사건이 아니라, 7년간 방치된 입법 공백을 행정적 유권해석으로 우회해 국가 관리체계 안으로 끌어들이는 제도적 전환점입니다. 약 자체는 이미 세계 80여 개국이 쓰고 WHO 필수의약품으로 지정한 검증된 성분이었지만, 국내에서는 법의 빈자리 탓에 음성 유통에 내몰려 있었죠. 이번 발표로 이르면 내년 1분기부터 임신 9주 이내, 초기 2년 원내조제라는 신중한 방식으로 물꼬가 트이게 됐습니다. 다만 건보 적용·약가·미성년자 동의 같은 핵심 쟁점, 그리고 무엇보다 아직 완결되지 않은 모자보건법 후속 입법이 남아 있는 만큼, 이 이슈는 '허가'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제부터가 본게임이라고 보는 게 맞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최오리
2026. 9. 15. 20:42 제약 관련
반응형

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요즘 부쩍 회의 자료에 등장하는 단어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물적분할'입니다. 그것도 공장이나 연구소가 아니라 영업·마케팅 부문만 콕 집어 떼어내는 방식이죠. 바로 지난 9월 15일, 보령이 전문의약품 영업·마케팅을 전담하는 커머셜 법인 '보령파마솔루션' 설립을 위한 물적분할을 이사회에서 결의하면서 업계의 관심이 쏠렸습니다. 생산·R&D는 모회사에 남기고 파는 조직만 별도 회사로 세우겠다는 건데요. 오늘은 제약사가 왜 하필 '영업·마케팅'만 떼어내는지, 그 장단점은 무엇인지, 그리고 실제 성공·실패 사례를 실무 관점에서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물적분할이 뭔가 — 인적분할과 헷갈리지 말자

개념부터 짚겠습니다. 회사를 쪼개는 방식은 크게 물적분할과 인적분할 두 가지입니다.

  • 물적분할(物的分割)은 기존 회사가 특정 사업부를 떼어 신설 회사를 세우고, 그 신설 회사의 지분 100%를 모회사가 그대로 갖는 방식입니다. 쉽게 말해 '모회사 → 자회사' 수직 구조가 됩니다. 기존 주주는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직접 받지 못하고, 모회사를 통해 간접적으로만 소유하게 됩니다
  • 인적분할(人的分割)은 반대로 기존 주주가 지분율대로 신설 회사의 주식을 직접 나눠 갖는 방식입니다. 두 회사가 나란히 서는 수평 구조에 가깝죠
  • 우리 상법은 인적분할을 원칙으로 하고 물적분할을 예외로 두고 있지만, 실무에서는 물적분할이 훨씬 자주 쓰입니다. 대주주가 지분 희석 없이 지배력을 유지한 채 자회사를 키울 수 있기 때문이죠

이번 보령 사례도 정확히 이 물적분할입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은 보령이 지분 100%를 보유하는 완전자회사로, 2026년 10월 주주총회를 거쳐 2027년 1월 출범할 예정입니다.


왜 하필 '영업·마케팅'만 떼어내나 — 4가지 이유

공장도 연구소도 아니고, 왜 파는 조직만 별도 법인으로 세울까요? 실무적으로 보면 이유가 분명합니다.

  • ① 커머셜 전문화 — '각자 잘하는 것에 집중': 생산·R&D와 영업·마케팅은 성격이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하나의 회사 안에 섞여 있으면 의사결정이 느려지고 자원 배분도 애매해집니다. 영업·마케팅 인력을 한 법인에 결집시키면 커머셜에만 특화된 조직·전략을 짤 수 있습니다. 보령이 신설 법인을 '대한민국 최고 커머셜 플랫폼'으로 키우겠다고 한 게 바로 이 지점입니다
  • ② 외부 도입품목(라이선스인) 확대: 이게 핵심입니다. 자사 제품만으로는 영업조직의 '판매 총량'에 한계가 있습니다. 별도 커머셜 법인을 두면 국내외 블록버스터 품목을 적극적으로 도입(license-in)해 판매 포트폴리오를 넓히기 쉽습니다. 실제로 보령파마솔루션은 자사 처방품목에 더해 외부 도입 품목을 늘려 국내 시장점유율 10% 이상을 목표로 내걸었습니다. 영업조직을 '우리 약만 파는 곳'에서 '잘 파는 것 자체가 사업인 곳'으로 바꾸는 겁니다
  • ③ 성과 중심 보상체계 설계: 제조·연구직과 영업직을 같은 잣대로 평가·보상하기는 어렵습니다. 영업만 따로 떼면 처방실적에 연동한 강력한 인센티브 체계를 독립적으로 설계할 수 있습니다. 최고의 영업·마케팅 인재를 끌어모으는 유인책이 되죠
  • ④ 사업별 가치의 독립 평가: 생산·R&D는 장기 투자와 파이프라인으로 평가받고, 커머셜은 매출·이익률로 평가받습니다. 두 사업을 분리하면 각 사업의 가치를 시장에서 별도로 인정받을 여지가 생깁니다

정리하면, 영업·마케팅 분할의 본질은 '파는 일'을 하나의 독립 사업으로 승격시켜 전문성과 외형을 동시에 키우는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장점 — 속도, 집중, 그리고 확장성

앞의 이유와 겹치지만, 분할이 주는 실익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 의사결정 속도: 분리된 법인의 대표는 커머셜 사안에 대한 결정권이 커집니다. 모회사의 복잡한 지배구조 속에서 결재가 지연되던 문제를 피할 수 있죠
  • 전문 인력 확보와 성과보상: 영업에 특화된 회사라는 정체성이 생기면 관련 인재 영입이 수월하고, 실적 기반 보상 설계도 자유롭습니다
  • 모회사 신용도 활용: 신설 자회사는 독립 법인이지만 초기에는 모회사의 신용과 브랜드를 그대로 업고 시작할 수 있습니다. 자금 조달과 도입품목 협상에서 유리하죠
  • 포트폴리오 확장의 유연성: 외부 품목 도입, 다른 제약사와의 공동판매 제휴 등을 '커머셜 회사' 단위로 빠르게 추진할 수 있습니다

단점 — '쪼개기 상장' 그림자와 조직 리스크

여기까지만 보면 좋은 전략 같지만, 물적분할에는 반드시 경계해야 할 그림자가 있습니다.

  • ① 쪼개기 상장 논란: 물적분할의 최대 리스크입니다. 알짜 사업부를 자회사로 떼어낸 뒤 그 자회사를 별도 상장(IPO)하면, 기존 주주는 정작 그 사업의 상장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의 사업이 모회사·자회사 두 곳에서 동시에 평가받는 '더블카운팅' 탓에 오히려 모회사 주가가 눌리는 '지주사 할인' 현상도 나타납니다. 자본시장연구원 분석에서도 모·자회사 동시상장 시 양쪽 기업가치가 모두 하락하는 경향이 확인됐습니다. 보령이 발표 즉시 "매각·분할상장 계획은 전혀 없다"고 못 박은 것도 이 우려를 의식한 겁니다
  • ② 주주가치 훼손 우려: 핵심 사업을 떼어감에도 기존 주주가 신설법인 지분을 받지 못하는 구조 자체가 반발을 부릅니다. 상장까지 가지 않더라도 "알짜를 왜 떼느냐"는 불만은 남습니다
  • ③ 조직·인력 동요: 영업·마케팅 인력이 통째로 다른 법인으로 이동합니다. 근로조건을 그대로 유지한다 해도, 소속이 바뀌는 데서 오는 불안과 이탈 가능성은 상존합니다
  • ④ 계열사 간 거래·정합성 문제: 모회사(생산)와 자회사(판매)로 나뉘면 두 법인 간 내부거래가 발생합니다. 이전가격, 공급단가, 연결 실적 인식 등 관리 포인트가 늘어나고, 자칫 '한 몸이었을 때보다 비효율적'이 될 수도 있습니다

성공 사례 ① — 동아제약(박카스·OTC) 물적분할

파는 사업을 떼어내 키운 대표적 성공 사례는 동아제약입니다.

  • 동아제약은 2013년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박카스와 일반의약품(OTC) 사업을 비상장 자회사 '동아제약'으로 물적분할했습니다(전문의약품은 동아에스티로 인적분할, 존속법인은 동아쏘시오홀딩스로 전환)
  • 분사 첫해인 2013년 2,897억 원이던 매출은 이후 꾸준히 우상향해 2022년 5,430억 원, 2023년 6,310억 원을 돌파했습니다. 소비자 접근성을 강화한 편의점용 박카스, 오쏘몰, 피부외용제(노스카나겔 등) 라인업이 성장을 이끌었죠
  • 최근에는 오펠라헬스케어로부터 둘코락스·알레그라 등 OTC 4개 품목의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따내며 '자사에 없던 품목을 글로벌 브랜드로 채우는' 커머셜 확장 전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동아제약 사례의 시사점은 명확합니다. 소비자 대상 판매(OTC) 사업을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키면, 채널·브랜드·도입품목 전략을 훨씬 공격적으로 펼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이 그리는 그림과 결이 통하죠.


성공 사례 ② — 종근당 지주사 전환(사업부문 전문화)

방식은 인적분할이지만, '사업부문 분리를 통한 전문화'라는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입니다.

  • 종근당은 2013년 투자사업부문(종근당홀딩스)과 의약사업부문(종근당)을 분할하며 지주사 체제로 전환했습니다. 목적은 사업부문별 독립 경영과 책임경영 체제 확립, 핵심사업 집중 투자였죠
  • 이후 지주사 종근당홀딩스는 자회사 종근당건강의 프로바이오틱스 '락토핏'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매출이 5년 새 4배 가까이 커졌습니다. 각 사업부문이 독립적으로 자기 시장을 공략한 결과입니다

핵심은 사업을 성격별로 나누면 각자의 성장 엔진이 따로 돌 수 있다는 점입니다. 한 회사 안에 묶여 있을 때는 묻혀 있던 사업이 독립하면서 빛을 발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실패(반면교사) 사례 ① — JW중외제약 CSO, 1년 만에 철수

반대로, '파는 기능을 밖으로 빼는' 시도가 기대만큼 안 된 사례도 있습니다. 물적분할과 법적 형태는 다르지만, '영업 기능 외부화'라는 큰 틀에서 반면교사로 삼을 만합니다.

  • JW중외제약은 비주력 제네릭 품목을 대상으로 영업대행(CSO) 체제를 도입했지만, 수익성과 효율성이 기대에 못 미쳐 약 1년여 만에 사업을 정리했습니다
  • 업계에서는 "혁신형 제약기업이 아닌 회사의 경우 CSO 운영이 오히려 수익성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해석이 나왔고, 실제로 종근당도 과거 CSO 확대를 검토했다가 실행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영업을 별도 조직·법인으로 떼어내는 것 자체가 만능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떼어낸 조직이 충분한 물량(도입품목·자사품목)과 수익 구조를 확보하지 못하면, '전문화'가 아니라 '비용 분산'에 그칠 수 있습니다. 보령이 도입품목 확대와 점유율 10%를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 커머셜 법인이 살려면 팔 물건이 계속 채워져야 하니까요.


실패(반면교사) 사례 ② — LG화학·LG에너지솔루션 물적분할 후 주가 논란

제약은 아니지만, 물적분할의 위험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 사례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 LG화학은 2020년 배터리 사업(LG에너지솔루션)을 물적분할한 뒤 상장시켰습니다. 그런데 기존 LG화학 주주들은 알짜 배터리 사업의 상장 이익을 직접 누리지 못했고, 모회사 주가는 부진에 빠지면서 '주주가치 훼손' 논란이 크게 일었습니다
  • 이 사례는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 = 쪼개기 상장'이라는 부정적 프레임을 대중에 각인시킨 결정적 계기가 됐습니다. 이후 한국 증시 전반에서 물적분할에 대한 감시가 강해졌죠

교훈은 분명합니다. 분할 자체보다 '분할 이후 상장 여부'가 시장 신뢰를 가른다는 것입니다. 보령이 이번에 "분할상장 계획 없음"을 반복 강조한 것은, 바로 이 LG화학 학습효과를 정확히 겨냥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영업·마케팅 물적분할 이슈가 OTC·커머셜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파는 일'이 독립 사업으로 승격되는 흐름을 읽어야 한다: 자사품목만 파는 영업에서, 외부 도입품목까지 얹어 '판매 역량 자체를 상품화'하는 커머셜 플랫폼으로 무게중심이 옮겨가고 있습니다. 도입품목(LI) 소싱, 공동판매 제휴 감각을 길러두는 게 좋습니다
  • 분할의 성패는 '팔 물건'과 '보상'이 좌우한다: JW중외제약 사례처럼, 떼어낸 조직에 충분한 물량과 성과보상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전문화는 공염불입니다
  • 시장은 '상장 여부'를 본다: 물적분할 뉴스가 나오면 반드시 '분할상장 계획이 있느냐'가 핵심 쟁점이 됩니다. 회사 IR·홍보 메시지를 짤 때도 이 부분을 어떻게 정리하느냐가 대주주·소액주주 신뢰를 가릅니다
  • 내부거래 설계를 미리 챙겨라: 생산 모회사와 판매 자회사로 나뉘면 공급단가·이전가격·연결 실적 인식이 곧바로 실무 이슈가 됩니다. 분할 전에 계열사 간 거래 구조를 명확히 세워둬야 합니다

정리하면, 제약사가 영업·마케팅만 물적분할하는 것은 단순히 조직을 쪼개는 게 아니라, '파는 일'을 전문 사업으로 독립시켜 커머셜 전문성과 외형을 동시에 키우려는 전략적 선택입니다. 동아제약처럼 소비자 판매 사업을 독립시켜 성공한 사례도, JW중외제약처럼 영업 외부화가 기대에 못 미친 사례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결정의 뒤에는 LG화학이 남긴 '쪼개기 상장' 학습효과가 그림자처럼 따라붙습니다. 보령파마솔루션이 "매각·분할상장 계획 없음"을 거듭 강조한 것도 그래서죠. 결국 영업·마케팅 분할의 성패는 '얼마나 잘 떼어냈느냐'가 아니라 '떼어낸 조직이 팔 물건을 계속 채우고, 시장의 신뢰를 지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최오리
2026. 9. 15. 16:54 제약 관련
반응형

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하루에도 수십 번씩 제약사 로고를 마주칩니다. 발주서, 제품 카탈로그, 경쟁사 광고물, 심의 자료까지…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왜 제약사 로고는 죄다 파랑 아니면 빨강이지?" 알고 보면 여기엔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색채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말없이 건네는 첫 인사이거든요. 오늘은 잠깐 머리 식힐 겸, 2025년 매출 기준 국내 TOP 10 제약·바이오 기업의 '상징 색상'을 하나씩 뜯어보겠습니다. 순위는 2025년 사업보고서(연결 기준)를 따랐습니다.

먼저, 제약사 로고에 왜 파랑·빨강·초록이 많을까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큰 그림부터 짚겠습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제약사 로고에 가장 많이 쓰이는 색은 푸른색 계열입니다.

파랑은 신뢰·안정·전문성을 상징합니다. 병원 가운, 의료기기, 정수(淨水) 이미지와 연결되면서 '안심하고 믿을 수 있는 약'이라는 인상을 주죠. 그래서 가장 무난하면서도 강력한 선택지입니다
빨강은 생명·열정·에너지를 뜻합니다. 심장, 혈액, 활력 같은 이미지와 맞닿아 있어 '기운을 되찾아주는 약'이라는 메시지에 어울립니다
초록은 안정·건강·자연을 상징합니다. 색채치료에서도 심신 안정을 위해 선호되는 색이라, 친환경·건강기능식품 이미지와 궁합이 좋습니다
오렌지·블랙처럼 정석에서 벗어난 색도 있습니다. 오렌지는 젊음·활동성·역동감을, 블랙·그레이는 프리미엄·무게감·모던함을 나타내죠. 남들과 다른 색을 고른다는 건 그 자체로 강한 차별화 선언입니다

이 축들을 머릿속에 넣어두고 TOP 10을 보면, 각 회사가 어떤 이미지를 '입고 싶어 했는지'가 훨씬 선명하게 보입니다.

1위. 삼성바이오로직스 — 삼성 블루

2025년 매출 4조 5,570억 원으로 국내 1위. 국내 제약·바이오 최초로 연간 영업이익 2조 원을 넘긴 CDMO 강자입니다
상징 색상은 두말할 것 없이 그 유명한 삼성 블루(Samsung Blue). 삼성 특유의 짙고 선명한 파랑은 글로벌 신뢰와 첨단 기술력을 한 몸에 담고 있습니다
CDMO(위탁개발생산)라는 업(業) 자체가 '글로벌 제약사들이 믿고 맡길 수 있느냐'로 승부하는 사업이라, 신뢰를 상징하는 블루만큼 정직한 색도 없죠

2위. 셀트리온 — 초록에서 진화한 블루·그린 계열

매출 4조 1,625억 원으로 삼성바이오로직스와 함께 '4조 클럽'을 형성한 바이오시밀러 대표 주자입니다
셀트리온은 전통적으로 초록색 계열을 안정·건강의 상징으로 써온 기업으로 분류됩니다. 생명공학 기업 특유의 '자연·건강' 이미지를 초록으로 표현해온 셈이죠
바이오시밀러라는, 오리지널 의약품을 대체하는 사업 특성상 '안전하고 검증된'이라는 신뢰 메시지가 중요한데, 초록·블루 계열이 그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3위. 유한양행 — 버드나무의 초록

매출 2조 1,866억 원으로 전통 제약사 중 부동의 1위. 폐암 신약 렉라자의 성공으로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90% 넘게 뛰었습니다
상징 색상은 초록(그린). 창업주 유일한 박사의 정신을 잇는 '버드나무(willow)' 심볼과 맞물려, 국내 제약사 중에서도 초록 이미지가 가장 뚜렷한 기업입니다
초록이 주는 안정감과 자연 친화 이미지는, 오랜 역사와 사회공헌으로 쌓아온 유한양행의 '정직한 제약사' 브랜드와 완벽하게 겹칩니다

4위. GC녹십자 — 이름부터 초록, 그러나 로고는 딥블루

매출 1조 9,913억 원. 혈액제제와 백신의 강자로, 이름 그 자체가 '녹(綠)십자', 즉 초록 십자가입니다
재미있는 건 CI 변경 스토리입니다. 예전 녹색 십자가 로고가 해외에서 마약 판매점(그린 크로스) 이미지와 겹친다는 해프닝도 있었고, 글로벌 도약을 명분으로 2016년 사명을 'GC'로 바꾸며 CI를 교체했죠
현재 CI는 열정·도전을 상징하는 빨강과 건강·번영을 상징하는 초록이 맞물린 십자 심볼에, 로고타입에는 강직함·정직함을 뜻하는 짙은 청색(딥블루)을 씁니다. 파랑·빨강·초록이 한 로고에 다 들어간, 이 목록에서 가장 다채로운 색 구성입니다

5위. 종근당 — 탄생·생명·희망의 CKD 블루

매출 1조 6,924억 원으로 광동제약을 제치고 3위권 전통 제약사로 올라섰습니다(전통 제약사 기준)
상징 색상은 CKD 블루. 종근당은 이 청색에 '탄생·생명·희망'의 의미를 담아 시그니처 컬러로 오랫동안 써왔습니다
2025년 말 50여 년 만에 CI를 교체하면서도, 청색이 가진 이 의미만큼은 그대로 유지한 채 명도만 조정했습니다. 색을 바꾸지 않았다는 건, 그만큼 파랑이 종근당 정체성의 핵심이라는 뜻이죠

6위. 광동제약 — 빨간 색조의 로고

매출 1조 6,585억 원. 우황청심원·비타500·삼다수 등으로 익숙한 기업입니다
광동제약은 국내 제약사 중 빨간색(혹은 빨간 색조) 로고를 쓰는 대표 그룹에 속합니다. 한미약품, 일동제약, 동화약품 등과 함께 '레드 계열' 진영이죠
빨강이 주는 생명력·에너지 이미지는 '건강 음료'와 '자양강장' 이미지가 강한 광동제약의 제품 포트폴리오와도 결이 잘 맞습니다

7위. 대웅제약 — 이 중 유일한 오렌지

매출 1조 5,709억 원. 우루사·임팩타민·이지엔6로 잘 알려진 OTC 강자입니다
상징 색상은 DW 오렌지(Pantone 114C)와 보조색인 다크 그레이(Pantone 425C). CI 규정에 따르면 오렌지는 젊음·활동력·약동감을, 그레이는 안정성·신뢰성·성장성을 의미합니다
파랑·빨강·초록이 넘쳐나는 제약업계에서 오렌지를 주색으로 밀고 나가는 건 그 자체로 강력한 차별화입니다. 매대에서 대웅 제품이 유독 눈에 띄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셈이죠. 전문의약품 라벨까지 오렌지로 통일하는 BII(브랜드 이미지 통합) 전략을 쓰는 것도 이 연장선입니다

8위. 한미약품 — 국내 레드 로고의 원조

매출 1조 5,475억 원. R&D 중심 제약사의 대표주자입니다
한미약품은 국내에서 빨간색 로고를 처음 시작한 기업으로 꼽힙니다. 이후 여러 제약사가 레드 계열을 따라온 만큼, '제약 레드'의 원조 격이라 할 수 있죠
여기서 흥미로운 반전이 있습니다. 로고는 빨강이지만, 전문의약품 포장 라벨은 오히려 파란색으로 통일하는 BII 전략을 씁니다. 대외 브랜드 색과 제품 라벨 색을 다르게 운용하는, 나름의 이원 전략인 셈입니다

9위. HK이노엔 — 케이캡의 그 브랜드

매출 1조 632억 원으로 매출 1조 클럽에 든 기업. 위식도역류질환 신약 '케이캡(K-CAB)'으로 유명하죠
옛 CJ헬스케어에서 한국콜마 그룹으로 편입되며 'HK이노엔'으로 새출발한 만큼, CI에도 이노베이션(innovation)을 강조하는 현대적 감각이 담겨 있습니다
신약 개발과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는 기업답게, 신뢰의 블루를 기반으로 하되 젊고 세련된 톤을 더한 색 운용이 특징입니다

10위. 보령 — 파랑·빨강 다 버리고 '블랙'을 택한 제약사

매출 1조 174억 원으로 1조 클럽에 안착. 겔포스·용각산으로 익숙하고, 2022년 '보령제약'에서 '보령'으로 사명을 바꿨습니다
상징 색상이 이 목록에서 가장 독특합니다. 보령의 CI 컬러 시스템을 보면 메인 컬러가 보령 블랙(PANTONE Black C)보령 다크 그레이(PANTONE 425C), 즉 무채색 계열입니다. 여기에 서브 컬러로 골드(874C)·실버(877C)·웜 그레이 3종을 더해 전체적으로 차분하고 고급스러운 톤을 완성했죠
파랑(신뢰)도 빨강(생명)도 아닌 블랙·골드를 택했다는 건, '전통 제약사'라는 틀을 넘어 프리미엄·모던·확장의 이미지를 지향한다는 선언에 가깝습니다. 실제로 보령은 국가필수의약품 안정 공급, 항암제 공급망 다변화 같은 '제약사만이 할 수 있는 ESG'를 사회적 성과의 중심에 두는 한편(이전 ESG 글에서도 다룬 바 있습니다), 우주 헬스케어 사업(CIS)까지 외연을 넓히고 있습니다. 미래로 확장하는 기업다운 색 선택인 셈이죠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가볍게 시작한 글이지만, 색 이야기 안에도 마케팅 실무의 힌트가 숨어 있습니다.

색은 '포지셔닝'의 첫 문장이다: 신뢰를 팔면 파랑, 활력을 팔면 빨강, 자연·건강을 팔면 초록, 차별화·프리미엄을 원하면 오렌지나 블랙. 신제품 패키지나 브랜드 론칭을 기획할 때, 경쟁사가 어느 색 진영에 몰려 있는지부터 보는 게 순서입니다
레드 오션에서 튀는 색이 먹힌다: 대웅제약의 오렌지, 보령의 블랙처럼 남들 다 쓰는 파랑·빨강을 피하면 매대에서의 시인성(視認性)이 확 올라갑니다. 색 하나가 곧 진열 경쟁력이 되는 셈이죠
브랜드 색과 제품 라벨 색은 분리할 수 있다: 한미약품처럼 기업 로고(빨강)와 전문약 라벨(파랑)을 다르게 가는 전략도 있습니다. 대외 이미지와 현장 식별성이라는 두 목표를 나눠서 잡는 방식입니다
색을 바꿀 때도 '의미'는 지킨다: 종근당이 50년 만에 CI를 바꾸면서도 청색만은 유지한 것처럼, 오랜 브랜드 자산을 함부로 버리지 않는 게 리브랜딩의 기본기입니다

정리하면, 국내 TOP 10 제약사의 색을 늘어놓고 보면 파랑(삼성바이오로직스·종근당·HK이노엔), 초록(유한양행·셀트리온), 빨강(광동제약·한미약품), 파랑+빨강+초록의 조합(GC녹십자), 오렌지(대웅제약), 그리고 블랙(보령)까지 제법 다채롭게 나뉩니다. 그저 예뻐서 고른 색이 아니라, 각 회사가 소비자에게 어떤 이미지로 기억되고 싶은지를 압축한 결과물이라는 거죠. 다음에 약국이나 마트에서 제약사 로고를 보게 된다면, "이 회사는 무슨 색을 입고 있나, 그리고 왜?"를 한 번쯤 떠올려 보시길. 브랜드를 읽는 눈이 한 뼘 더 넓어질 겁니다.

반응형
posted by 최오리
2026. 9. 10. 22:35 제약 관련
반응형

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이건 왜 약이고 저건 왜 건기식이지?"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습니다. 그중에서도 단골로 등장하는 사례가 바로 종합비타민 '센트룸'입니다. 지금은 마트·온라인·약국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대표 건강기능식품이지만, 원래 센트룸은 엄연한 일반의약품이었죠. 오늘은 이 센트룸이 왜 약에서 건기식으로 '옷을 갈아입었는지', 그 배경과 실무적 함의를 정리해보겠습니다.


먼저, 같은 비타민이 왜 약도 되고 건기식도 되나
센트룸 얘기를 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게 있습니다. 똑같은 성분·함량의 비타민인데 어떤 건 일반의약품이고 어떤 건 건강기능식품입니다. 이게 왜 갈리느냐가 이번 글의 핵심 열쇠입니다.

  • 식약처의 설명을 빌리면, 원료가 동일해도 '사용목적'에 따라 일반의약품으로도, 건강기능식품으로도 허가를 낼 수 있습니다. 공산품이 이용목적을 달리하면 의료기기 허가를 받을 수 있는 것과 같은 논리죠
  • 치료·예방을 목적으로 약효를 인정받으면 일반의약품, 건강 유지·증진에 도움을 주는 식품으로 기획하면 건강기능식품이 됩니다
  • 이 차이는 표기·광고에서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일반의약품 종합비타민은 '피로회복', '구내염 완화' 같은 구체적 효능을 쓸 수 있지만, 건기식은 '체내 에너지 형성에 필요', '~에 도움을 줄 수 있음'처럼 간접적인 표현만 허용됩니다

정리하면, 비타민의 분류는 성분이 아니라 제약사가 제품을 어떤 목적으로 기획하고 허가받느냐에 달려 있다는 겁니다. 센트룸의 신분 변화도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합니다.


센트룸의 이력 - 1994년 일반약으로 데뷔, 2017년 건기식으로 전환
센트룸의 국내 이력을 시간순으로 보면 이렇습니다.

  • 1994년: 국내에 일반의약품 멀티비타민으로 처음 출시. 오랫동안 화이자의 간판 OTC 브랜드였습니다
  • 2017년: 일반의약품 품목허가를 취하하고 건강기능식품으로 전환. 이때부터 약국뿐 아니라 대형마트·온라인 등으로 유통 채널이 확 넓어졌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눈여겨볼 대목이 있습니다. 센트룸은 2004년 '건강기능식품에 관한 법률' 적용 소급범위 이전에 이미 판매되던 품목이라, 다른 비타민들과 달리 자동으로 건기식 전환이 되지 않은 채 계속 일반의약품으로 남아 있던 케이스였습니다. 즉 처음부터 '약으로 있을 수밖에 없던' 태생적 배경이 있었던 셈이죠.


핵심 - 왜 굳이 건기식으로 바꿨나 (직구·분류 차이 문제)
그럼 잘 팔리던 일반의약품을 왜 건기식으로 바꿨을까요? 결정적 방아쇠는 국내와 국외의 제품 분류 차이, 그리고 거기서 파생된 직구 민원이었습니다.

  • 센트룸은 국내에서는 일반의약품이었지만, 미국·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는 식품 혹은 식이보충제(dietary supplement)로 유통됩니다. 실제로 종합비타민은 국제식품규격위원회(Codex) 기준으로도 '음식의 한 종류'로 인정되고, 미국에서도 식이보충제로 분류되죠
  • 그러다 보니 소비자들이 해외에서 반입하거나 직구로 센트룸을 사들이는 사례가 꾸준히 늘었고, "해외에서 식품으로 산 제품을 들여오는 게 왜 문제냐"는 민원이 계속 제기됐습니다
  • 국내에서는 의약품이라 직구·통관 규제를 받는데, 원 판매국에서는 식품이니 소비자 입장에선 납득이 안 되는 구조였던 겁니다
  • 화이자가 확인해보니, 국내 수입의약품 중 해외와 국내 분류가 이렇게까지 확연히 다른 제품은 센트룸이 사실상 유일했습니다

결국 화이자는 이 '한 몸 두 신분' 상태에서 벌어지는 통관·직구 혼선과 불필요한 행정력 낭비를 해소하기 위해, 국내 분류를 아예 해외와 같은 '식품(건기식)'으로 맞추는 쪽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2017년 건기식 전환의 가장 직접적인 이유입니다.


전환의 '숨은 이득' - 유통 채널 확대
명분은 직구·분류 문제 해소였지만, 실무 관점에서 보면 건기식 전환에는 분명한 부수 효과가 있었습니다. 바로 유통 채널의 대폭 확대입니다.

  • 일반의약품은 오직 약국에서만 팔 수 있습니다. 반면 건강기능식품이 되면 대형마트, 편의점, 온라인몰, 홈쇼핑까지 판매처가 활짝 열립니다
  • 센트룸은 일반약 시절 '고가격·저마진'에 지명구매율이 높은, 이른바 약국 필수 구성품으로 포지셔닝돼 있었습니다. 마진은 박한데 안 갖다 놓을 수는 없는 품목이었죠
  • 건기식 전환은 이 브랜드를 약국이라는 울타리 밖으로 꺼내 소비자 접점을 폭발적으로 늘리는 계기가 됐습니다

즉 '직구 민원 해소'라는 정당한 명분과 '채널 확장'이라는 사업적 실익이 맞아떨어진 결정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약국 입장에서는 - 계륵이 된 지명 품목
여기서 실무적으로 짚어야 할 게 약국가의 반응입니다. 채널이 넓어진다는 건 뒤집어 보면 약국의 독점 판매권이 사라진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 건기식 전환 이후 센트룸이 마트·온라인에 풀리면서, 약국 판매는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다만 지명도가 워낙 높은 품목이라 약국 입장에선 안 갖다 놓기도 애매한 '계륵' 신세가 됐죠
  • 화이자(이후 GSK컨슈머헬스케어)는 이런 반발을 의식해 약국 전용 라인('센트룸 프로', '센트룸 실버프로' 등)을 별도로 공급하는 투트랙 전략을 폈습니다. 마트용과 약국용을 나눠 채널 갈등을 완화하려는 시도였습니다
  • 그럼에도 소비자 입장에선 센트룸이 일반약인지 건기식인지 허가 구분이 사실상 무의미하기 때문에, 결국 회사의 가격·반품 정책이 약국 안착의 성패를 가르는 변수가 됐습니다

이 대목은 앞서 다뤘던 '창고형 약국' 이슈와도 통합니다. 건기식이 약국 밖으로 나가 마트·온라인과 경쟁하는 순간, 동네 약국의 매출 방어가 화두가 된다는 점에서 결이 비슷하죠.


실무자 입장에서 정리하는 포인트
센트룸 사례가 OTC·건기식 실무자에게 주는 시사점은 이렇습니다.

  • 분류는 '성분'이 아니라 '허가 전략'이다: 같은 종합비타민이라도 치료 목적으로 갈지, 건강 증진 목적으로 갈지에 따라 신분이 바뀝니다. 신제품 기획 단계에서 어느 트랙을 탈지가 곧 채널·광고 전략을 결정합니다
  • 채널과 규제는 세트로 움직인다: 일반약은 약국 독점이라는 보호막이 있는 대신 채널이 좁고, 건기식은 채널이 넓은 대신 경쟁이 무한대입니다. 어느 쪽이 브랜드에 유리한지는 품목 성격에 따라 다릅니다
  • 글로벌 분류와의 정합성도 변수다: 해외에서 식품인데 국내에서만 의약품이면 직구·병행수입 문제가 상시 발생합니다. 글로벌 브랜드일수록 국내외 분류를 맞추는 게 관리 비용을 줄이는 길일 수 있습니다
  • 전환에는 '구제품 처리' 부담이 따른다: 실제로 센트룸도 전환 과정에서 약국이 보유한 구 일반약 재고 판매·반품 문제가 두고두고 잡음이 됐습니다. 분류를 바꾸는 결정에는 기존 유통 재고 정리 계획이 반드시 함께 서야 합니다

정리하면, 센트룸의 건기식 전환은 단순히 "약을 식품으로 격하시킨" 사건이 아니라, 국내·국외 분류 차이에서 비롯된 직구 민원을 해소하면서 동시에 유통 채널을 넓힌 전략적 선택이었습니다. 비타민의 신분은 성분이 아니라 사용목적과 허가 전략이 결정한다는 점, 그리고 그 결정이 곧 채널·광고·약국 관계까지 연쇄적으로 바꾼다는 점을 센트룸만큼 잘 보여주는 사례도 드뭅니다. OTC와 건기식의 경계에서 제품을 기획하는 실무자라면, '이 제품을 어느 옷을 입혀 내보낼 것인가'를 가장 먼저 고민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반응형
posted by 최오리
2026. 9. 6. 23:12 제약 관련
반응형

일반의약품(OTC) 마케팅을 하다 보면 예전에는 신경 쓸 필요가 없던 단어들이 요즘 부쩍 회의 자료에 등장합니다. 탄소중립, 넷제로, 재활용률, 인권영향평가 같은 것들이죠. 바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이야기입니다. 매년 봄이 되면 주요 제약사들이 앞다퉈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는데, 올해도 어김없이 6~7월에 걸쳐 보고서가 쏟아졌습니다. 오늘은 ESG가 왜 제약업계에서 특히 중요해졌는지, 그리고 각 제약사가 실제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는지를 대표 사례 중심으로 정리해보겠습니다.


ESG가 뭔가 — 세 글자부터 정리

먼저 개념부터 짚겠습니다. ESG는 기업을 평가할 때 재무 성과만이 아니라 아래 세 가지 비재무적 요소를 함께 본다는 개념입니다.

  • E(Environment, 환경): 온실가스 배출, 재생에너지 전환, 폐기물·자원순환, 친환경 포장 등
  • S(Social, 사회): 안전보건, 인권, 협력사 상생, 지역사회 공헌, 그리고 제약업계 특유의 '의약품 접근성'
  • G(Governance, 지배구조): 이사회 독립성, 주주가치 제고, 반부패·윤리경영, 리스크 관리

핵심은 이제 이게 '착한 기업 이미지 만들기'용 홍보가 아니라 투자 유치와 규제 대응을 위한 필수 요건이 됐다는 점입니다. 그 배경을 다음 항목에서 보겠습니다.


왜 하필 지금, 제약업계가 ESG에 매달리나

ESG 자체는 전 산업에 걸친 흐름이지만, 제약업계가 특히 발 빠르게 움직이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 공시 의무화가 코앞입니다: 금융위원회는 자산 2조원 이상 코스피 상장사부터 ESG 공시를 의무화하고, 이후 중견·중소기업으로 단계적으로 확대할 방침입니다. 준비가 안 된 기업은 곧 제도적으로 불이익을 받게 되는 구조죠
  • 글로벌 투자자가 ESG를 봅니다: 해외 수출·기술수출·라이선스 계약이 많은 제약바이오 특성상, MSCI 같은 글로벌 ESG 평가 등급이 곧 투자 유치와 파트너십의 문턱이 됩니다
  • 업(業)의 본질과 맞닿아 있습니다: 제약은 애초에 '국민 건강'이라는 공적 가치를 다루는 산업입니다. 필수의약품 안정 공급, 의약품 접근성 확대 같은 활동은 다른 업종의 ESG와 달리 사업 그 자체와 직결됩니다

정리하면, 제약업계에 ESG는 '이미지 관리'가 아니라 투자·규제·업의 본질이 한꺼번에 걸린 생존 전략이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실제 사례로 보는 제약사 ESG

말로만 하면 감이 안 오니 대표 사례를 축별로 살펴보겠습니다.

① 환경(E) — SK바이오사이언스·대웅제약·GC녹십자

  • SK바이오사이언스는 사업장 직접 배출(Scope 1·2)을 넘어 원료 조달·물류·유통 등 공급망 전반의 온실가스(Scope 3)까지 산정해 제3자 검증을 완료했습니다. 자연 관련 재무정보공개협의체(TNFD) 프레임워크로 생물다양성 영향까지 공개한 것도 특징이죠. 2026년부터는 안동 공장 등 주요 사업장이 태양광 발전 전력을 공급받습니다
  • 대웅제약은 병 포장 제품의 완충제가 불필요하다는 현장 의견을 반영해 우루사정·대웅로수바스틴정 등의 포장재를 제거하고, 그 결과 고밀도 폴리에틸렌(HDPE) 플라스틱 사용량을 전년 대비 약 1,680t 줄였습니다
  • GC녹십자는 제약업계 최초로 SK E&S와 계약을 맺고 재생에너지 전력을 공급받기로 했습니다. 공장 조명을 LED로 바꿔 소비전력을 절감하는 것도 여러 제약사가 공통으로 하는 대표적 환경 활동입니다

② 사회(S) — SK바이오사이언스·보령

  • SK바이오사이언스는 백신 기업답게 '의약품 접근성'을 사회 부문 핵심으로 내세웁니다. 단순히 백신을 공급하는 데 그치지 않고, 소외 지역이 스스로 백신을 만들 수 있도록 돕는 기술이전 사업을 추진 중이죠
  • 보령은 국가필수의약품인 경구용 페니실린계 항생제 생산시설을 증축해 연간 생산능력을 2배 이상 늘렸습니다. 세포독성항암제 공급망 다변화 등 '필수의약품 안정 공급'을 사회적 성과의 중심에 뒀는데, 제약업만이 할 수 있는 ESG의 좋은 예시입니다. 여기에 천연기념물 황새 복원 사업 같은 차별화된 환경·사회 공헌도 눈에 띕니다

③ 지배구조(G) — 일동제약·한미약품·유한양행

  • 일동제약은 한국거래소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 준수율을 전년 대비 60%포인트나 끌어올리며 지배구조 개선 폭이 컸습니다. 반부패 컴플라이언스 강화, 전사 통합 리스크 관리 체계 정비도 함께 추진했죠
  • 한미약품은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하고 주주환원율 20% 목표를 공개하는 등, 단순 지표 충족을 넘어 실질적 거버넌스 개선에 나섰습니다
  • 유한양행은 2050년 넷제로 목표를 세우고 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CDP) 참여, 기후관련 재무정보공개(TCFD) 지지 선언 등 국제 기준에 맞춘 대응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ESG의 함정 — '스펙 채우기'와 그린워싱

여기까지만 보면 ESG는 무조건 좋은 흐름 같지만, 실무에서 경계해야 할 지점도 분명합니다.

  • 가장 자주 지적되는 건 '스펙 채우기(형식적 준수)' 문제입니다. 특히 중소·중견 제약사를 중심으로 전자투표, 승계정책, 배당정책 같은 핵심 지표를 여전히 미준수하는 사례가 많습니다. 보고서는 냈는데 실제 경영 구조는 바뀌지 않는 경우죠
  • 그린워싱(green-washing) 리스크도 있습니다. 실제 성과 없이 친환경·사회공헌 이미지만 부풀리면, 오히려 공시 의무화 이후 검증 단계에서 신뢰를 잃을 수 있습니다
  • 결국 관건은 ESG가 홍보용 보고서에서 그치느냐, 실제 경영 구조와 제품·공급망까지 바꾸느냐입니다. 상법 개정 흐름과 맞물려, 앞으로는 '얼마나 그럴듯한 보고서를 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느냐'로 평가의 무게중심이 옮겨갈 전망입니다

실무자 입장에서 챙길 포인트

OTC·마케팅 실무 관점에서도 ESG는 남의 일이 아닙니다.

  • 친환경 포장이 제품 기획 단계로 들어옵니다: 대웅제약 사례처럼 완충재·용기 단순화, 재활용 포장재 전환은 이제 원가·환경·마케팅이 얽힌 의사결정입니다. 신제품 패키지 기획 시 ESG 관점을 미리 반영해두는 게 좋습니다
  • 필수의약품·접근성은 곧 브랜드 자산입니다: 보령·SK바이오사이언스처럼 '공급 안정'과 '접근성'을 사회적 성과로 내세우는 건, 제약사만이 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ESG 스토리입니다. 광고·홍보 메시지로도 강력한 차별점이 됩니다
  • 공시 의무화 일정을 캘린더에 박아두세요: 자산 규모에 따라 의무 공시 시점이 다가옵니다. 데이터 수집 체계(온실가스·폐기물·에너지 지표 등)를 미리 갖춰두지 않으면 막판에 큰 부담이 됩니다

정리하면, 제약회사의 ESG 경영은 이제 여유 있는 기업의 '착한 활동'이 아니라, 투자 유치·규제 대응·업의 본질이 한꺼번에 걸린 생존 조건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SK바이오사이언스의 공급망 탄소 관리, 대웅제약의 포장재 감축, 보령의 필수의약품 안정 공급, 일동제약의 지배구조 개선처럼, 각 사는 자기 사업 특성에 맞는 ESG 스토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다만 그 힘이 곧 함정이기도 합니다. '스펙 채우기'와 그린워싱을 넘어서지 못하면, 보고서만 두툼해지고 경영은 제자리인 결과로 이어지니까요. 결국 ESG의 성패는 '얼마나 그럴듯하게 공시했느냐'가 아니라 '실제로 무엇이 달라졌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출처: 아시아경제(2026.6.5), 메가경제(2026.6.5), 인사이트코리아(2026.6.5), 메디팜헬스뉴스(2026.6.29), 컨슈머와이드(2026.6), 히트뉴스(2026.6), 데일리팜, JW그룹

반응형
posted by 최오리
반응형